나의 이야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쨍쨍하늘 2023. 2. 28. 15:30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군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의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1965. 11.4)

 

********************************************************

 

 Besame Mucho

Kiss Me Much..

쪽쪽..

그런 말고

쪽 팔리는 쪽쪽쪽!

 2월은

이런 진한 한숨 담아

뿌연 하늘만 산란한다.

 

 엄마의 푸념을

진지하게 들어주던 또딸

수업이 끝날 즈음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우리 둘이 외식하자.

내가 저녁 살게.'

쥐뿔 ㅋ

십원 한닙 번 적 없이

용돈 받아 사는 녀석이?!

좋아!

"엄마를 이해한다고.."

엄마를 달랜다.

어쩜 좋아,

지갑 꺼내는 속도가 지애비다.

 

  2nd 토요일.

잠꾸기들을 선동해 양양행.

긴 역사의 실물 간데없고

그 터 위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절 터

낙산사.

반면

그대로의 기억인

의상대, 홍련암과 낙산비치 호텔.

오랜만!

오래도록 살아있어

해후.

 

 다음날

청와대 관람.

인왕산 등지고

둥글게 빙 두른

서울 성곽 터의 안쪽에 자리한,

대한민국의 Landmark인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뒷자리에 위치한..

국민학교 때

조문행렬에 끼어

정문 앞에서 본 본관의 기억.

그리고

성북동 학생 집에서

(이 댁 기사님이)

옥인동 학생 집까지

데려다줄 때,

지금은 

민속박물관으로 바뀐,

역사 속에만 남은

중앙청 담벼락 사잇길로 돌아

(승용차만 지날 수 있었다.)

입구의

경비병들을 지나친 정도였던 

소소한 기억 업고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엿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일하다

잠시 쉬어가는 휴가

달다.

긴장감 풀린

아침을 여는 알람소리 놓치고

공기 넣은 풍선마냥 부풀어 오르고

마음 한켠 

품은 욕심(?) 또한 천근만근이다.

 

 다 끝났다.

또딸의 입결.

내년을 기약하며

집에서

가까운 학교 가기로

애초부터 작정했건만..

기어이

눈물 뿌린다.

금세 가는 일 년

총알 탄 인생의 향연이다.

뭐 그리 급하다고 교재를 벌써..

한 학기는 푸지게 쉬어가렴.

하와이도 다녀오고?

 

 3rd 토요일

뭔 하늘이

잿가루 뿌려놓은 거 같다.

우산을 들고 가는 이가

하나, 둘..

오늘은 뭐 하지?

 

 일요일

우산을 쓰는 이,

그냥

걷는 이가 

내려다 보이는 아침.

인내심 바닥을 건드리는

심술꾸기 또딸.

자업자득인 거잖냐?

아고오,

내가 

볶여 돌아가시겠다.

 

 Yh쌤을 만났다.

자기가 

얼마나

시크한 사람인지 모른다. ㅋ

호강에 겨운 소리를

푸념처럼 솎아내다

하와이에서 공수해 왔다는 하와이안 코나

찔끔 동냥해 주고

늘 그렇듯

약  3시간 만남 후 헤어짐.ㅋ

 

 틀어진 여행 계획으로

서먹해진 사이 완화해 보자고..

여전히

넉넉했던 친구(였는데 ㅜ)는 

까칠을

인생모토로 정한 것 같다.

오지랖은 십자가였다.

 

 가평 친구에게 놀러 갔다.

항상

노력하고 준비하는 삶을 사는 친구다.

점심도 먹고

강가 낀 소나무정원 까페에서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홀짝,

내가 좋아하는

블랙 올리브 박힌 빵도 먹으면서..

자고 와야 했는데

당일치기로 돌아왔다.

 

 다음날.

자고 왔더라면

기안 수정  때문에 대박 난리 날 뻔..

그래서

지도안, 준비서류도 미리미리 준비.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아주 현실적이라

자조

 

 악기 수리해 보려고 낙원상가로.

앓느니 죽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경우라 포기.

나의 역사를 담은 첼로는

부셔진 채로 전시용 골동품이 될 예정.

또딸과 익선동 투어.

그리고

걸어서 교보문고로..

마침내

김기림 시집 장만

정지용 시집도..

지난달 (2권 사들임)부터

구입하고자 한,

여행 중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읽을 계획이던 4권의 시집을 다 가졌다.

비행기는 못 타게 됐지만

든든하기가 끝판이다.

 

 깊은 노여움이

분노로 확장하여

숨통을 조이곤 했는데

항상 

뒷북치듯 인지하게 하는

나의 어리석음으로 귀착

아연실색.

또딸이 나를 살렸다. 

 

 

B. Y. E.  Feb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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