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울린다

쨍쨍하늘 2022. 12. 31. 09:33

 

            어울린다

                                진은영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이런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 둔 흰 달걀들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잘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너에게는

빈 새장이 잘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

 

 올해

대미를 장식하는 커피는,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향이 주변을 압도,

커피 안 마시는 마딸도

커피향이 퍼지면

감탄사를 날리는

Yemen Mocha Mattari 다.

 

 스트레스로 

불어난 체중 때문에

무릎 연골이 무리했다는, 

꽉 찬 오후에서야 기상하여

아침을 잃은 또딸과

패딩을 보러 나서는 토요일.

어둠이

천지를 뒤덮은 저녁이 됐는데

달라진

광화문 광장을 보고 싶단다.

아이는

어릴 적 

박물관 나들이를 떠올리고

나는

교보문고 현판의 싯구절을..

'Hi, Long Time, No See..'

맘에 드는 신상 패딩 장만에

기분 좋은 아이는

내게

음료를 대접하겠단다.

조금 전

나에게 받은 용돈으로?

줬다 뺐는 상황 초래.ㅋ

광화문에서 롯데 백화점까지

찔끔 걸었는데

아이는

무릎이 아프다고 ..

롯데 앞은

크리스마스 Moment로

야단법석.

버스를 타고

명동 입구를 지나는데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익숙한 기억 잡기.

 

 다음날,

일요일 아침.

이번엔

아이 운동화가 영 아니다.

아침 내내

e commerce 뒤져

운동화 장만.

 

 금요일,

수험생 할인 뿌리펌을 하겠단다.

상시 할인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꼬드겨(?)

나의

할인 미용실로 데려갔다.

펌이 끝난 아이는

맘에 안 들었는지

문자 폭탄을 날리곤

약속한 외식도 포기하고

먼저

집으로 간다는 거다.

서비스가 삭제된 셀프 미용실을 

처음 가 본 아이는

흥미 대신

셀프 지적받는 일에 잔뜩 골이 났다.

재밌지 않니?

아니라면

네가 받고 누렸던

서비스에 경의를 보내던가?!

 

  2nd 토요일

정오가 지나도 세 명에게는

♪) "아직도 어둔 밤인가 봐' 다.

영종도로

조개구이 먹으러 가자고 뿜뿜..

근근이 일어나 차례로 씻고 나선 길.

다 저녁이다. ㅜ

모두들 하루의 첫 끼니를

저녁식사로 시작했다.

또딸이

오래도록 떠나보지 못한 아쉬움일까,

공항에 가서

음료수라도 마시잔다.

제법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항.

내년엔

꼭!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일요일

"엄마 말이 맞지?!"

펌 머리는 관리가 관건이라니까!

일주일만 참으면

머리가 안정을 찾고

기양 냅둬도 알아서

 Naturally Curly Hair 로 돌아온다니까!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절대

남의 조언 따위의 인정이 어려운

남편, 자식 데리고 사는 일은 

언성이 높아야 하고

강압적일 필요가 있음을

25년간 실천하고 산다.

그래서

고상하고픈 품격은

틀려먹은 팔자 탓으로 다시 고정된다.

젠장..

 

  3rd 토요일

동이 터오를 무렵부터

실눈이 사부작 사부작.

백색의 면사포를 두른

조용한 아침 거리가 뭉클.

Hus는

아예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며 숙면을 누리고,

한파를 혼자 맞은 아침.

♪) J. Reeves의  'Snowflake' 가 어울리는 아침,

White Sabbath.

아침은 희망이다.

목표를 다짐하는 의지를 다질 수 있으니.

 

  4th 토요일,

잠꾸기 또딸이 새벽에 깨어있다.

웬일?

 

 다 저물어가는 '22년

올 한해를 돌아보자니..

애기,

'상대적으로는 부족했으나

개인적으로 최선이었다.

라고 엄마는 인정한다.

나에겐?

'세상사 정직을 말할 수 있음은

나의 잇권이

철저하게 배제됐을 때서야

제대로

이성 챙겨

냉철하고 명쾌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아침에 엘리베이터 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흘렸는데

오후,

그 정직이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소소하게 

정상참작으로 정직을 오용했더군.

AI가 보편화되는 세상이 오면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정말

원시적인 것이 될 것인가?

 

 씩씩 당당하게 셀리를 만나던

그러나

노년을 맞은

B. 크리스탈의 허연 수염과

필리핀의 대표 멜로배우

R. 고메즈의 중년이 된 모습들에서

나의 지나 온 세월들이 거울처럼 등장.

어머머..

 

  2022년 12월 31일

토요일 아침.

눈발의 흔적 담은

건너편

건물 옥상이 내려다보이는,

일상의 뿌연 오늘의 아침과

드디어,

마침내

한해를 보내는 예정된 작별.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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