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쨍쨍하늘 2018. 8. 31. 08:30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라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서

 

한 서른 해 더 살아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 꽂고

서른 해만 더 살아볼꺼나...

 

 

********************************************

 

 더운 정도를

연일 헤드뉴스로..

8월의 첫날,

거리로 나와 걷는데

내가

곧 타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낯선 이와

눈이 마주치자 동병상련.

말보다 진한

탄식이 본능적으로 반응.

수영장 물로 퐁당.

또 모두의 일체감이

느껴지는 한마디.

"아아, 너무 좋다."

미처 적응할 준비도 없이 맞은

열대의 무더위..

 

 주말,

통장정리도 하고

야채가게도 들러야 하고

걸을만 했다.

익숙해서일까.

분명 

한여름의 무더위건만

혼잣말을 했다.

'날이 시원해졌네.'

내친김에

사거리 마트까지 걸었다.

양손에

장거리 듬뿍 들고

나의 등굣길,

통근버스인

(셔틀버스 대신에) 마을버스를 탔다.

주말 먹방.

 

 일요일 이른 아침,

하늘이

잔뜩 검회색이더니

비가 내린다.

Hi, 오랜만.

(며칠전 지나가듯 뿌려대긴 했지만)

지금의 모양새는

제법 굵다.

대지가 촉촉해질 것 같다.

어느 연예인의 쇼케이스급

160톤의 물공연이 생각나는 아침.

밥만 먹고 사는 일 Vs

즐길 줄도 아는 일의 가치

전자는

생존만을 운운할 것이고

후자는

생존만으로 삶의 가치

말할 수 없다 할 것이라..

지나침의 역설을

들춰내지 않을 수 없다.

젠장

몇줄 쓰다보니

비는 간데 없다.

햇님이 방긋 해맑다.

'비의 약 올리기'를

맹비난할까부다.

 

 월요일 아침,

우산을 준비하란다.

이른 아침

학교로 나서면서

망설이다 우산을 챙겼다.

버스정류장에 서자

예전이라면

소나기라 할만한

한여름의 장대비가 퍼붓는다.

그러나

지금은 서프리카라서

적도의 시원한 꽃비,

스콜이 내린다고 정의한다.

 

 아침의 온도가 견딜만 하다.

요란한

매미소리가

이제사 들린다.

적도의 온기를 체험하는 일이

극기 수준이라

찬물로 샤워하는 일상.

샤워기로

뿜어져나온 물줄기는

바로 뜨신 물이 되어

머리를 타고 내린다.

내가

온수를 만들고 있다고 하자

냉수 자체가

미지근한 거란다.

Tropical을 경험하는 올 여름.

겨울만은

알래스카가 아니길..

 

 Hus를 만나

시가와 친족이 된 지

20년 이상.

돌아보니

할 말 다하고

내 뜻 반영하면서

인정, 대우, 사랑받은 듯하다.

감사하다.

 

 우리의 정서와 달리, 

옛날 분답지 않았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자식에게는

베풂 대신

사랑과 관심을 구하는 정도가

영락없는 애기였던

시모님의 임종.

 

 암의 전이가

전체로 퍼지고

한,두달에서

길어야 반년을 진단하던

의사 말대로

병원에 재입원하신 지

두달 여만에

노인분들에게 치명적인

패혈증과 폐렴으로..

 

 이른 일요일 아침,

아무래도

느낌이 예전과 달라

자다가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산소 마스크로 힘겨운 사투.

오후가 되자

의사가

가족들을 모두 부르라 한다.

여느 때의

일상을 팽개치고

급히

달려오는 자식들을

기다릴 새도 없이

기계가

요란한 굉음을 알리고..

시동생, 나,

문병 오신 시숙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잘 가시라..' 하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시동생의 애처로움과

지극했던 애정이 담긴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동서의 말귀가 떠올랐다.

'전생에 끔찍히 사랑하다

이루지 못해

이승에서 다시 만난 사이가

아니고야 저럴 수 없어요.'

모두가

혀를 두를 정도였던,

효도를 뛰어넘었던

열정의 母子관계..

 

 이번엔

마딸도 함께 한

시모님의 입관식.

그리고

성복제.

이틀을

꼬박 새하얗게 맞았다.

생전에

죽음을 두려워하셨던

어머니는

'화장'을 강하게 손사레하셔서

시부님 옆으로 안장되셨다.

 

 선영지.

(아주버님의 주도로)

일체가 준비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봉분을 다지는 동안

시부모님이

생전에 가족으로 사셨던

생가 앞마당에

차려진 빈소에서

서울까지

못오신 고향 분들의

문상을 받고 음식을 나누고

생가 바로 밑에서는

봉분을 다지는 이들의

노고가 미화된 

노동요가 계속 울렸다. 

땡볕 아래

구성진 노랫말.

저승길 떠나기 싫을만큼

이승 삶의 파노라마를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낮 기온은

40도를 알리고 있었지만

자식들 모두

제 역할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

더할 나위 없는 숙연한 분위기.

삶의 수순을 마감하는

순간순간들이

순조롭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마을 어르신이

제사의 처음과 끝,

현대의 제사 방식과

의미까지 해석하시며

탈상을 주도하셨다. 

 

 시모님.

저승길 가실 때는

무섭다며 아들보고

도와달라 손 내밀지 마시고

혼자

이승에 오신 것처럼

저승길도

씩씩하게 가셔서

먼저 가신

아버님과 울 Hus 생모님 만나시면

다정하게 손 잡고 인사하시고,

어머니가

이들에게 남긴

터럭 같은 恨(?)은,

악의 없었음과

시동생의 인내로

업보의 남김이 없고

이승에서

형제간의 짙은 우애로

정착했음을 잘 해명하시고요.

신과 함께..

 

 때를 두른 봉분이

모양새를 갖추고

오랜 세월 그대로였던

시부모님의 봉분에도

새롭게

때 단장이 둘러졌다.

死後 세 분의 만남.

서로 단장의 예로 시작하셨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여름내

가뭄과 혹서에 시달리던 대지에

굵은 소나기가 제법 내렸다고.

잔디가 파릇하니

잘 자라서

'추석에 오면 예쁘겠다'

아주버님이 톡에 말씀하시자

어머니 묘소에

국화꽃이라도

놔드리고 싶다며

이내

시동생이 주말에 내려가자고..

Hus도 좋아라 한다.

시누이도

따라나선다 하며

유품도 그대로인,

그러나

어머니의 부재인 빈 방에서

서울의 삼남매는

술잔을 기울였다.

평생

자식들의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애뜻함.

투병하시느라

힘드셨을 때를 제외하면

복도 많은 어른이시다.

동서 말이 또 떠오른다.

"삼국을 통일하는데 기여하셨을까요.."

양가의 부모님을

모두 보내고

우리가 번호표를 받을 채비.

 

  아침,

또딸이 야단법석.

"아침기온 23도! 32도가 아니구우!"

오랜만에 에어컨 없는 밤사이를

보내고 맞는..

서유석

♬)'세월'이라는 노래말이..

참아낸 것인가,

이겨낸 것인가,

흐름에 쓸려온 것인가.

한 여름 말이다.

모처럼

쾌적한 날씨 속에

어느 집에선가

뿜어져나오는

구수한 콩나물국 내음.

익숙한 안식.

 

 태풍 예고로

임시휴업과

월요일의 재량휴업일이 겹쳐

생각지도 못한

휴가(?)를 받았다.

그런데 

시작도 전에

요란했던 솔릭.

서울을 스쳐갈 것 같은

나의 예감이 일치.

오랜만에

온가족이

마딸네 학교 근처 맛집에서

냠냠할 참이었으나

학위 수여식으로 복작복작.

그냥

남산 왕돈가스를 먹고 싶다는

또딸의 제의로

보슬비 내리는 남산길 돌아

갖가지 돈가스로 먹성 과시.

대신

나의 초.중 모교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티라미스 아이스크림으로.

Sweet..

 

 8월의 끝자락에서야 위엄(?),

맹위를 떨치던 열기

그 무더위가

사그라들어가는 기세.

또딸이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서

춥단다.ㅋ

돌고 도는 세상.

태풍도 지나간 끝에

전국적으로

비가 제법 내린다.

토,일요일은

사경을 헤매듯

자고 자고 또 자고.

그래도

다음날 또 쉴 수 있다는

그럴싸한 여유로운 안도감.

 

 월요일.

Hus와 동대문으로 쇼핑,

동네 근처 마트에서 장보기.

저녁,

외식 싫어하는 Hus가

웬일로

제주 삼겹을 먹으러 가잔다.

온가족이 총출동.

이 음식점 수지 맞았다.ㅋ

음식점에서는

정말이지

많은 양을 추가 주문하면서

먹는 일에만 충실했다.ㅋ

우즈베키스탄과 역전승의 골이

음식점 분위기를

한껏 고무시키고

피로 회복한 심신에

Hus가

알코올을 기분좋게 권한다.

집에 들어와서는 비몽사몽..

그리고

일상의 일터가 기다리는

다음 날을 맞았다.

 

 수순이었던 게지.

안식 같은 휴가 끝에

        일감이 따라오는 것 말이다.

죙일

무서울 정도의 폭우가 퍼붓고

습한 기운 듬뿍에

베란다에 펼쳐논,

텃밭에서

잔뜩 따온 고추 내음새에

푸욱

쳐진 채로

엑셀을 열고

기절 직전까지 뚝딱뚝딱.

완성한 양식 메일까지 보내고서야

나의 전설같은 명성이

버거움으로 느껴지는 포만감.

 

 마지막 금요일.

일을 마치고

가락시장에서 준비한

킹크랩 들고 가평 친구네로.

세 부부가 모인다.

우리가

동창 모임으로

만난 사이인데

남편들끼리 호형호제하며

더 신나는 사이들이어서

매번 

꼭 그들의 모임인 것 같은

구색을 갖춘다.

나를 유부녀로 만든 일등공신들의 모임.

 

 생애 가장 무더웠던 여름.

보내야할 것들과

그로 인해

얻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었던

올 8월의 지나침 대한

이별은

♬)쇼팽의 왈츠 9번 '고별'

     

    뜨겁게,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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