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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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참 특이하게 마셔.
멍 때리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난 하얘지려고 마시는데"
"나는 차분해지려고 마셔
술 들어가면
머릿속에
붕 떠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던
퍼즐 조각들이
착 제자리에 앉는 거 같아
순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머릿 속에 뭐가 왔다 갔다 하는데?"
"욕.
욕만 해,
하루종일 속으로."
"누구한테?'
"몰라, 나도."
"욕에 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야?"
"없어.
그냥 욕만 해.
욕 안할 때는
술 마실 때,
잘 때,
이렇게 말할 때.."
( '나의 해방일지' 8화 중)
내 청춘기의 술 마시기도 인간사 고행이었다.
며칠을 괴로울 작정으로 자학하듯 퍼부어 댔다.
몸이 괴로우면 만사가 육신의 삐걱거림에만 집중하게 되서
한동안 멍에 같은 무게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거든.
잠시지만 잊을 수 있는 거 말야.
그니까 술을 마시는 일은 '잊게 해주오' 인 거였어.
괴로운 동안 신음하며 덜어내기 위해 용을 쓰는 거지.
괴로워해야 했던 그 어리석음이 아직도 부끄러워 coming out을 못하겠지만..
알아서 자폭이 필요했는데 기막힌 운빨 하나에 자폭 타임이 자뻑과
엉켜버린 게 끝판이었을 거야.
그 휘청거림은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채로 더욱 병들어만 간 것 같아.
'.. And just maybe I'm to blame for all I've heard..'
♬) Nirvana가 말해주고 있었어.
그 땐 미칠갱이였을 거야.
못 받아들일 거면서,
그래서
휘청거려놓고 '받아들이자, 인정하자.' 하던
질기게도 익숙했던 끝 모를 쓴 기운들.
갈망만 하다 뒈져버린 내 청춘.
새삼
패색으로 짙어버린 축축한 기운이 상기시킴의 목적으로
가슴팍을 시리게 횡단하며 번진다.
그때
내가 좀 강했더라면..
되고 싶었던 것을 얻으려 정신줄만 잡았더라면..
갈망에서 충족을 얻었을까?
Shit.
지금의 술이란,
그렇게 지나고 지나와
시원한 입가심의 한잔이다.
오래 살 생각은 절대! 없으나
죽는 날까지 주변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육신의 보살핌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현실적 다짐으루다..
으음 진정으로 술 고프다.
자유휴업일이 길게 버티고 있는데 마셔봐 ㅋ
그때가 아니고 지금이니까.
인턴십을 시작한 마딸,
급식, 학식 먹으며 학창시절 다 보내고
이젠 구내식을 먹는다고..
식단표 확인하더니 헐렁한 옷을 챙겨입고 나간다.ㅋ
학교 때 급식메뉴 보고 좋아하는 거랑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마딸의 경력 쌓기.
Dry Finish! 네가 좋아보인다. ㅋ
어린이날, 어버이날 지나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말한다.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라고..
나,
너희들의 스승 맞는 거지? ㅋ
금요일, 졸업한 아이들이 인사한다고 복도를 메우고
'어머나!'
고맙다고 찾아온 아이들에게
나도 '고맙다!'고.
짖궂었던(?) 여자아이는 손 내밀어보라더니 비타음료를 손에 쥐어준다.
'아고, 시원해라.
네 죄(?)는 모두 사하였다. ㅋ'
그 긴 시간에 담긴 너희들과의 스토리가 감사한 날이구나.
톡으로도 문자가 온다.
일주일 내내 대면 공개수업을 할 수 없어
사진 전송으로 대체 작업 하느라 금요일 오기만 기다린
보람이 감동적 Surprise 였다.
응원이 기운을 솟구치게 하는구나.
Thanks Again.
2nd 토요일,
집 안의 열려진 창 사이로 바람소리가 매서웠다.
추운 줄 알았다.
거리로 나가니 시비 붙는 줄 알았던
요란한 바람은 봄볕과 앙상블 중이었다.
바람! 너도 봄볕이 좋으니?
머리를 잘라야겠다.
이제 좀 쉴 수 있나 했다.
공지사항, 개별평가서가 버티고 있었다. ㅜ
'주말까지 죽어야겠구나' 하는 하교 무렵,
Hus의 전화, 응급실이란다.
왼쪽 중심망막 동맥폐쇄.
나이 듦의 알람.
Hus의 하늘이 내려앉았다.ㅜ
엄밀히 치면 24시간 이내 혈전제 복용했지만..
희망사항이고 염원이다.
"넌 상황을 자꾸 크게 만들어.
오늘은 팔뚝 하나 물어뜯기고
내일은 코 깨지고
불행은 그렇게 잘게잘게
부숴서 맞아야 되는데
자꾸
막아서 크게 만들어.
난
네가 막을 때마다 무서워.
더 커졌다.
얼마나 큰게 올까.
너는
본능을 죽여야 돼.
도시로 가서
본능을 무뎌지게 해야 돼.
여자들 수박 겉 핥는 얘기,
그런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지겹고 지겹게......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는 무서워.
너
무서워."
( '나의 해방일지' 10화 중)
주말을 Hus의 상실감으로 도배.
이 또한 지나가도록 보내보자고..
받아들임의 힘겨운 시간..
나의 무거워진 어깨는 주변의 안중에 등장하기에는 시기상조다.
Hus가 말한다.
나는
지극히 긍정적이라 오래 살 거라고.
그래,
병적 취미생활처럼 달고 산우울 따위는 X나 줄까 싶다.
나,
잘게잘게 잘라진 불행을 부숴서 맞고 있는 거지?
나는!
여자들 수박 겉 핥는 얘기,
그런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틀려먹은 거지..
"평범은 같은 욕망을 가질 때!
그럴 때 평범하다고 하는 거야.
추앙, 해방 같은 거 말고!
남들 다 갖는 욕망!
너희 오빠 말처럼
끌어야 되는 유모차를 갖고있는 여자들처럼.."
( '나의 해방일지' 12화 중)
나는 평범한가?
결혼 이후,
지극히 즐겁게 평범을 갈망하고 추앙했다.
이번 5월은
홀짝홀짝 술 푸게 했다.
구씨 말대로
"인생이 이래. 아, 좋다 싶으면.."
갈망에 멍들다 뒈져버린 청춘을 소급당해도
애정할 수 없고 갈망의 선명함만 혈전이 돼버렸다.
이 혈전들이 어딘가를 제대로 막아버리면 육신의 고통으로 아름아름 앓다가..
그때야
비로소
요물 같던 머리통도 육신으로만 작동하면서 평범으로 기록될 거야.
이 한편의 드라마로
나 또한 나의 힘겨움, 그 문제를 짚어보게 된 점을 들어
박해영 작가에게 기립박수, 찬사를 보낸다.
'나를 읽혀버리면서
정신 번쩍 들게 뼈 때렸습니다.'
Toast to,
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난 것처럼
구겨짐 하나 없이.. ( '나의 해방일지' 2화 중)
당연
이별곡은
Nirvana의 ♬) 'Lithium' 이다.
B.Y.E.. Ma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