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법정스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우리 삶의 중요한 한 몫이다.
그 소리를 통해서
마음에 평온이 오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리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침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땅 속에서 삭는
씨앗의 침묵을 배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는
우리들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꽃들은 저마다
자기 특성을 지니고
그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며
자신을 다른 꽃과
비교하지 않는다.
견주지 않고
자신의 특성대로
제 모습을 지닐 때
꽃은 그 꽃답게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꽃이 피고
새잎이 피어나고
그 속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요즘의 숲은
하루가 다르게
수채화 같은
투명한 물감을
풀어내고 있다.
묵묵히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수런수런
새잎이 피어나는 것 같다.
새삼스레
사는 일이
즐거워지려고 한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아닌
새날이다.
겉으로 보면
같은 달력에 박힌
비슷비슷한 날처럼
보이지만,
어제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사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있음이다.
어제나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이다.
산에는
울창한 수목이 자라고
맑은 햇살과 싱싱한 숲향기,
그리고
태고의 신비가 파랗다.
산에는
때묻지 않은 자연이 있고
억지가 없는
우주의 질서가 있다.
또한 이 산 저 산에
그 산의 주인인 수도인이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세속에 닳아지고
얼룩진 몸과 마음을 쉬려면
한적한 산을 찾게 된다.
흙탕물 위에
한송이의 연꽃이
피어날 때
더러운 흙탕은
자취를 감춘다.
더럽다는 분별이
저절로 사라져버린다.
청초한 꽃에 의해
투명하고 맑게
조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연꽃은
자기 몸에
단 한방울의 흙탕물도
용납하지 않는다.
흐린 곳에 살면서도
항상 조촐한,
이것이
연꽃의 생태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기 이전에
무거운 침묵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이야말로
자연의 말이고
우주의 언어다.
뛰어난 사상과 위대한 종교는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를 치는
시끄러운 언어에서가 아니라
자연의 침묵에서
싹텄다는 사실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그 대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들의 삶 속에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게 할 것이다.
자연은
팍팍한 우리 일상에
가장 정결한
기쁨을 안겨 준다.
가을은
떠돌이의 계절인가.
나뭇잎을 서걱서걱 스치고
지나가는 마른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문득문득 먼 길을
떠나고 싶다.
바람이란
그 바탕이
떠돌이라서 그런지
그 소리를 듣기만 해도
함께 떠돌고 싶어진다.
가을은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무게를 헤아리는 계절.
낙엽이 지는
일모(日暮)의 귀로에서
한번쯤은 오던 길을
되돌아보며 착해지고 싶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같이만이라도
행복을 누리고 싶은
그러한 계절이다.
겨울은
밖으로 헛눈 팔지 않고
안으로 귀기울이면서
여무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머지않아 우리들에게
육신의 나이가
하나씩 더 보태질 때
정신의 나이도 하나씩
보태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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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새해.
나이 듦에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을 묻자니..
건강이 되버렸다.
일단
혈압은 가족력 때문에
우려스러우나
조금 더 지켜보자신다.
왼쪽 윗니 부분이
가끔 시큰거리는 것도
겁이 나 치과로 달려갔다.
마모되고 금이 그어진 치아들..
딱히
손 볼 건 없단다.
일단
두려운 것들로부터
잠시 숨 고르기.
주말,
수영도 쉬니
아침이 허전하던 참에
찜질방 가자고..
집 밖을 나서는 일이
귀찮아 끌려가듯 다녀왔다.
그 덕일까
일요일 오후는 정신이 맑은 듯.
저녁은
상가의 소문난 수제비 집으로..
착한 가격으로 승부하던 집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올 한해
살기 팍팍하다는 소리들이
벌써부터 아우성..
주말을 늘어지게 보내야
일주일이 편해 그런지
쇼파를 침대 삼아
뒹굴대는 일상의 생활화.
TV는 아예 끼고 산다.
'Almanya - Welcome To Germany'
유료영화를 뒤적이다 찾아낸..
청년의 터어키 노동이민자가
반세기의 독일 생활 끝에
백발의 노인이 된 채로
내키지 않는 독일 시민권 획득.
그리고
가족들과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동안
독일인이 더 어울리는
자식들의 문화적 이색 체험과
본향에 대한 그 무엇의 조합.
나도
외국 땅에서 살아보려 했던
어느 때가
뭉클하게 기억을 보태며
내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이유에 숙연해짐이..
학교와 집의 쳇바퀴 일상이
문득 무료함을 부추기고
마침
채점도 일찍 끝난
목요일 이른 오후,
어딘가로
잠시 내빼고 싶었다.
그러나
교문을 나서자
이내 피로가 발목을 잡았다.
길 건너 마트의 딸기 세일,
국수 잘하는 집의
바지락 칼국수도 눈에 들어오고..
순간, 변덕이 속삭였다.
'가긴 어딜 가?
고작 회차해 돌아오는
버스 타고 돌기?!
내일이 금요일이지만
내일 피곤해 지치면
(내일)오후 친구들과
약속은 어쩔건데?'
어느새
내 발길은
난데없이 국수집으로..
그리고
마트용 봉지 낑낑 들고
집으로..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일이
떨리기까지 했다.
가평에
저택(?)을 짓고 사는 친구는
자기 동네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말하며
미친 아파트 가격에 매달려
휘청대는 도시 한복판의
사람들을 안타까워 했다.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허영지수!
이러한 것을 노리는
돈벌이쟁이들 놀음에
역전의 한방 기대와 미련의
욕구지수가 더해져,
나중에 죽을망정
지금은
행복지수로
둔갑하고마는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한다는
이유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 또한
존재의 본능이라 그럴지도..
다음날 연속으로..
작년,
여름이 가기 전에
얼굴들 보자던 친구.
가을도 지나
해를 넘기고서야 연락이..
오랜만에 만났다.
꾸준한 취미생활로
그림을 그리더니
작년 가을,
장미를 주제로
전시회를 했다고..
입담이 만만찮은 친구라
모처럼 잠재운
내 말빨 실력도 뿜뿜.. ㅋ
이 친구한테 끌려서
또다른
고교 동창을 만나러 갔다.
친하지도 않았고
성도 가물한..
그런데
아주 신선했다.
오지랖이 넓어
남 좋은 일
많이 하는 친구란다.
나보다
한참의 연배 어르신을
만나는 것 같았다.
색다른 세상의 공존 체험.
그러나
대화 도중
나의 눈은
촛점을 잃다 못해
감겨가고 있었고
결국은
나로 인해
자리를 접게 됐다.ㅜ
돌아오는 길,
집에 들어서자
급한 일 치뤄야 하는 사람마냥
서둘러
바로 쓰러져 기절지경.
저녁,
성수동의 줄서서 기다려
먹는다는 참숯 갈비.
온가족이 먹으러 가기로 한
마침 그날 ㅜ
두어시간 기절 끝에 일어나
정말 한시간 기다려
그날
저녁 판매 종료는
우리를 끝으로!
입시 때,
문닫고 들어가는
짜릿함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보다.ㅋ
여튼
소문난 갈비를
소문값 한다며 냠냠.
아프고 난 뒤로는
술, 커피 한모금도 안하는
건강한(?) 생활식을
하던 차였는데
Hus가 '고기에는 소주 한잔!'을.
까짓 먹다 죽을까 ㅋ
그리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절의 연장.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보편적 다양성을 얘기하는데,
듣고 있던 상대가
아주 민감하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자기가 같은 부류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자
나타나는 현상으로
서두를 꺼낸 이에게
편견이라 우기면서
자기 기분을
더 상하게 할 것이라..
(편견이란 것 또한
생각의 차이이건만)
이런 상대라고 알아버리면
얼른 화제를 전환하는 것이
최상이다.
안 그러면 끝끝내 이기려
억지의 궤변으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것이라..
그래서인지
꼬임없이
단순무식(?)하게 사는
이들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대신 드라마&영화를 읽다.
(올 일년도 쭈욱 그럴듯 하다.)
영화 'Bohemian Rhapsody'
중학 시절의 아이돌.
명동의 중앙우체국과
화교 학교의 삼거리 모퉁이,
외국 잡지들을 팔던 곳.
어렵게
장만한 잡지 속에
등장했던 Queen.
영화의 서두부터
그 어린 시절의 명동 거리와
익숙한 노래들이 섞이면서
풋풋했던 어느 때의
뭉클한 감정들이 복받쳐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고
나중엔
내가 Live Aid에
서있는 것마냥
손가락까지 움직이며
입벙긋으로 ♬♪.
영화가 끝나고 스텝자막이
끝나갈 때까지 ♬♪.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노래들이 너무도 익숙해서
그 시절의 감동몰이.
내 옆에
바짝 서있던 또딸이,
"엄마, 그렇게 감동적이야?"
"지금 니가 BTS에 열광하는 그런.."
또딸의 눈이
커지면서 공감의 눈빛.
"아아.."
M. 포만의 '아마데우스'가
클래식의 귀재를 끄집어냈다면
'Bohemian Rhapsody'는
Pop의 귀재를..
이들의 공통된 삶은,
일상이
타협 or 이해가 어려워
자칫 아집의 경계에 있다.
마침내
이들이 만들어낸
공감의 정도가
대중들을
열광의 경지에 이르게 하면
천재로 인정되나
그 과정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그들은 외로움에 시린
불통의 딴따라(?)다.
드라마와 영화,
이들을 읽고
감동도 얻을 수 있지만
글귀 같은 대사를
순간의 감동으로 끝내고
그 대사를
다시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취약한 기억력에
서글픔이 급습.
BUT
이순(耳順)이 목전인 여생.
언제부터인가
순리를 받아들이는
평범함을 지향하던
내 삶에 긍정의 엄지척.
잘난 이로
주목 받지 않은 범부인 것이
이제사 감사하다..ㅋ
작년 겨울처럼
또 같은
발가락을 접질렀다
절둑절둑..
접질은 아침,
더욱 열 받는 것은,
매번 친구 부르듯
호출하는 시●●님.
아무리 둘러대도
몇번의 만남이지만
그 연례행사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절둑거리며 갔는데도
기어이 선심(?)의
물건들을 안긴다.
선의의 다름.
부모 세대들의 어렵던 시절.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을
결례로 여기던..
식사 초대를 받으면,
더는
먹을 수 없을 만큼
배부름을
진심 가득 말해도
대접하는 이의 정성이
먼저인 것처럼 말이다.
각자 살아온
세대차이가 부르는
이해불가의 소통.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을 피해갈 수 있었다는 것.
대낮 또는 이른 저녁,
시장통 입구의 음식점에서
중년과 노년의 여인네 둘이
술을 앞에 놓고 앉은 풍경.
마르고 닳도록 들은
넋두리를 듣고 있자면..
돌아오는 길,
지쳐 눈물이 핑 돌 지경이라..
개학.
아직
2018의 학사일정은
끝나지 않아서..
일년간 복도에서
인사를 나눴던 선생님들과 목례.
'오래만..'이라는
무언의 눈인사도 나눴다.
2주 뒤면,
졸업식을 끝으로
2018의 모든 학사일정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봄 방학은
아주 아주
오랜만에 긴 여행으로.
올해의 첫달을 보내면서
바람이 있다면
IF가 없는 한 해가 되길..
HI! 2019! 잘 지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