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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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을 말하는 한해의 끄트머리.
뭔가 기억할 것이 있다면
'더욱, 그 어느 때보다'를 넣어..
그런
2020년이 저물어 간다.
그 무심함 또는 평정심에 경의를 듬뿍 담아 12월을 맞고
알아서 가는 길에
나도 무심히 손 흔들 준비.
첫 주말 아침,
치과 예약길이지만 버스를 세 번씩 환승하면서
서울 나들이 계획을 첨가했다.
주말 아침과 코로나 여파로
버스는 기사님 달린 널널한 리무진이었지만
모양새는 패키지 같은 버스 투어.ㅋ
거기에
나의 시간적 여유를 담을 수 있음이 좋았다.
아침은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막 어둠을 거둬낸 말끔함이다.
이십 대..
그때는 신용산역 대신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이었고
(동부이촌동을 뺀) 주변은 허름..
그즈음의 우뚝 선 국제빌딩은 우수 건축상을 받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신축 건물들에 묻혀버렸다.
'세월 참!'
1st 일요일,
또딸의 논술 시험장을 데려다주고 기다림의 두 시간여..
집합 부담으로 이동이 필요.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도를 살피다 보니 화계사가 눈에 들어왔다.
종점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곳.
생각지도 않게 나의 패키지 버스 투어 이틀째를 맞았다.ㅋ
어제와 다르지 않게 한 두명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는 텅 빈 버스.
삼각산 자락 아래로 제법 절 터다운 모습을 갖췄다.
근데 대웅전은 쪼매만 했다.
그 좁은 안에서 망자의 49재가 예정된 아침이었나보다.
문답의 기도를 드리는 중에 어수선을 타고 한마디..
"가족이신가요?"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이미 떠났지만 이승의 연으로 사는 이들이
망자를 기리는 제를 갖추고픈 시각인 듯해서 얼른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좋다는 이승을 떠난 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다 부질없는 노릇이기만 할까?
윤회는 물을 수 없더라도 주어진 삶의 최선은
이번 생을 떠날 때 미련을 남기지 않아 좋을 듯한데 말이다.
그때 그러하였던 사람 사는 기억들의 한 축.
대웅전 앞 계단을 내려와 대웅전이 정중앙으로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연꽃초에 기원을 담아 불을 밝히고..
이런저런 생각들 덜어내며 절을 둘러싼 산을 보자니
을씨년, 황량함을 듬뿍 담은, 스치기만 해도 바스라져나갈 것 같은
마르고 누런 나무 가지 일색이다.
다시 짧은 산길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탔다.
조금 전
나를 내려준 젊은 기사님과 조우.
(기사님은 나의 절 나들이 동안 휴식이었나 보다.)
얼마의 옷깃을 스친 인연일까..ㅋ
학교 앞에 오자 타이밍 절묘하게 또딸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어디야?"
"정문 앞."
서로의 기다림 없이 바로 만남.
그 시각에 일어나게 했던, 화계사에 안치된 생면부지 망자의 배려일까..
7주 동안 선함의 타이름을 받아 속죄하고
이승을 떠나는 시간이라니 말이다.
마침
장의차가 지나간다.
"또딸, 오전에 장의차 보면 운이 좋다는 말 있어."
아이는 오전임을 확인하려는 듯 얼른 시계를 보고는
장의차에 합장하는 자세가 진지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했다.
"그저 합격을.."
하며 굽신거린다.
"잘 쓰기는 하고?"
세 개중 하나는 혼을 갈아서 썼단다.
"뭣이라?"
자꾸 되물었다.
우리 세대의 심혈을 기울인다거나 사력을 다한다는 뜻이건만
원색적이고 도발적이며 언어의 뇌쇄성이었다.
아이는
"참나, 처음 들어봐?! 이런 말, 우리 사이에서는 흔히 쓰는데.."
월요일 아침.
아이는 또 다른 논술을 치르러 갔다.
시험 시각 한 시간 전쯤 도착할 작정으로
아빠와 어둑한 길을 일찍부터 나섰다.
시험이 이미 끝날 무렵 문자.
'오늘도 혼을 갈고 빻아 스윗 달콤(족발이나 손수처럼같은 말의 강조다 ㅋ) 한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고운 슈가 파우더가 폼나게 뿌려졌나요?"
"망했어. 아무 말 대잔치였어. 주제 자체가 넘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문자가 넘 느끼하다는 한마디까지! ㅜ
붙자고 보는 시험이라기보다 대한민국의 대학 발전기금
일명 벽돌값 기부하고 과거제를 느껴보는 논술 급제.
젠장..
화요일,
지치고 힘든 와중 나의 스트레스는.. 폭식
저녁 먹고 파인트 한통을 혼자서 이틀 연속 해치우고 있다.
이 닦는 일도 건너뛰고 바로 꿀잠.
꿈자리가 요란하여 눈을 뜬
수요일 아침.
어제
삼겹살과 먹은 파채의 역함이 숙취처럼 올라오고
준비 중인 아침은 여직 어둠만 짙다.
학교.
기초학력의 아이들 도형을 가르치느라..ㅜ
간신히
스무 문제의 학습지를 끝낸 한 아이가 말한다.
"휴우, 피를 갈아 풀었네!'
뭐라?! 피를 갈다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언어의 극단.
라떼를 말하는 꼰대 세대들의 고상 떠는 언어유희가 불편한 이유인가,
흔해빠짐의 표현 대신 자극적인 것으로 21세기 창조를 채우려는 것인가,
여튼
심신의 고단함으로 다리가 후덜덜. 목도 아플 지경.
이러지 않아도 되는 나의 열정(?)에 내가 나가떨어지는 심정.
액정이 박살나 새로 장만한 지 얼마 안 되는 휴대폰 교체 후
알뜰하게 잘 쓰고 있는데 휴대폰 여러 곳에 실금이 좌악..
대리점 가기 전 덮혀진 필름을 살짝 걷어냈더니
액정이 아니라 두꺼운 필름이 나간 거였다.
필름을 바꾸니 새 것처럼 환하고 좋다.
한동안은 더 쓸까 한다.
휴우.
금요일 아침.
일주일이 너무 금세다.
새벽녘을 지난 아침은 뿌연 하늘에 눈이 내릴 것 같더니
점심 무렵,
햇님 쨍쨍에 세상이 환하다.
그러다 또 뿌옇고 환하기를 반복하는 하루.
2nd 일요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예비 할미는
새 아침의 밝기를 기다리건만 아침 7시도 어두컴컴..
8시가 되가려 할 즈음
간신히 뿌연 바깥 낮은 건물들 지붕 위로 예보된 눈이 펄펄.
올해의 첫눈으로 기록될만한 눈이 쌓여간다.
티라미스가 당긴다.
Hus가 희망을 얘기한다.
얼씨구..ㅋ
학교는 3단계 발령
등교 수업 없이 모두 원격으로 전환.
(나의 교실은 미어터지겠다.)
각 교실 선생님들만이 학습꾸러미를 전달하느라 분주할 뿐
긴급 돌봄과 기초학력이 필요한 아이들만 모인,
죙일 영하의 한파 속에
다시
적막강산 같은 학교는 돋보기를 들이댄 듯 커 보이기가 휑할 정도다.
또 투덜이의 반란.
얼마 전, 자기는 몰라도 틀려도 상관없는데 왜 내가 이리 몰빵이냐 우기며
여튼
풀어놨으니 가겠다는 것을 앉아서 틀린 부분 다시 풀라고 했더니
다른 친구 봐주는 사이 낼름 가버리고 말았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은 지가 벌써 일 년 전이다.)
연신 죄송하다는..
다음날 아이가 와서 하는 말이,
"아니, 선생님은 그걸 엄마한테 다 말하면 어떡해요?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네 행동의 정도를 알고는 있으렸다!
가관.
자기는 공부 따위는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단다.
더는 보호자가 필요 없을 만큼 세상을 다 깨우친 척했지만
부모 앞에선 물질적 의존을 직시한 고로 마냥 순한 어린양.
(이게 너에게 협박인 거였네.)
협박하지 말란다.
협박이란! 너의 잘못을 공개 목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란다.
"내가 너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 너에게 압력을 가할 목적인 거니?"
"엄마한테 말할 거잖아요?"
"담임 선생님께 말할 건데?! 그날, 니 교실로 내려갔는데
선생님이 안 계셔서 엄마한테 전화 드린 거고?!"
"그게 협박이잖아요?"
"그렇다면, 넌! 네가 충분히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행동하는 거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잘못을 나에게는 함부로 보여도 된다?!
나는 만만해요?"
아이는 말을 돌린다.
정답은 아니라도 틀리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냔다.
서술 문제는 온통 장난질이다.
'다른 방법으로 풀어보시오.'
'계산기 쓰기'
이런 식이다.
수학의 정답 Vs 틀리지 않는 답
뭐 아이의 인정받고 싶은,익지도 않은 벼라 숙일 줄 모르는
지나친 잘난 척의 튀는 행동이라는 것은 알지만
성의 없는 정도를 넘어 무례하기가
상대해야 하는 이의 분노지수를 자극한다.
하다 하다 이젠 나의 말투가 기분 나쁘다며 덤빈다.
"세상사 다 상대적인 거 아니겠니?"
자기는 남을 기분 나쁘게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단다.
예상한 대답이라 실소.
영리한 아이다.
조금만 쳐줘도 기본을 뛰어넘는데 새로운 단원이 나오면 항상 이 모양이다.
'자신이 백지인 것을 상대방이 모르기 바라는 위장술.'
우월감의 꼴값 갑질.
머리가 좋으면 뭐하니? 쓰지 않는 것을? 언제든 맘 먹고 싶을 때 쓴다고?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범부들의 세상 비웃기나 하다
그보다도 못한 바닥에서 허우적거릴 것을!
그러다
인생 종 치고 한탄하는 말로가 수순인 것을!
이런 팩폭을 날리고 싶지만 나의 열정도 거기까지는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정지!
이런 아이들에게는 상호작용 역할놀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 꾀에 빠지면 자기만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인지, 자각 능력을 길러주도록 말이다.
예) 친구들과 중식집에 갔다.
아이 1: 애들아 짜장과 짬뽕중 뭐 먹을래?
아이들: 짜장! 짬뽕!! (웅성웅성)
자뻑소녀: 난 깜풍기!
(갑분싸를 둘러보고는 거만한 어투로)
중식집이잖아?!
탕수육, 라조기, 팔보채 등등 다양한데
왜 짜장과 짬뽕만 선택해야 하는데?
아이 1: 야아, '짜장과 짬뽕중' 이라고 했잖아?
자뻑소녀: (비아냥의 습관적 어투다)
그니까! 왜? 왜?! 꼭 '짜장과 짬뽕중' 에서냐구?!
자기들끼리의 무언의 질서일 수도 있고,
모두의 한정적 의견일치는 자신들의 놀이에
한껏 집중할 수 있어서도 좋고 등등.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여타 이유들의 공공연함의 무시.
이 자뻑소녀가 그 모인 자리에서 튀는 모습의 연출이 아니라
정말로, 깜풍기를 꼭! 먹고 싶은 것이었다면
모인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이고
분란을 최소화 하자면 전체 동의가 얻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크던 작던 그들만의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성에서부터 가정, 지역, 국민성 나아가 인간성을 구분한다.
하여 이런저런 경우도 한 두번은 이해가 되겠지만
빈번하다면 공감대에 있어 분열의 조짐은 사필귀정.
아이 1: 매번 네 식대로 하고 싶다면
모임 때마다 네가 대접을 원칙으로 하던가?
자뻑소녀: (거만한 표정으로 황당하다는 듯)
내가 왜? 왜 그래야 하는데?
난 그냥 내 것만 내고 나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되는데?!
놀이의 질서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범부들을 향해 진부하다는 듯 맹비난을 쏟을 참인 자뻑소녀의 안타까움.
자기중심적 행동의 문제점.
남과 어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자기에게만 집착하느라
남의 얘기 따위는 관심도 없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반복적 지루함에 누군가 조심스럽게 지적했을 것이지만
자뻑소녀는 내심 격분하며 어거지 같은 말꼬리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실상은
상대가 일리있는 인정 대신 질려서 손 들때까지.
그러면 자뻑소녀는 속으로
'역시 나의 머리를 이길 사람이 없어' 하며
흡족의 감정지수를 극대화할 지도 모른다.
즉 상대의 제안에 대해 공동의 배려를 생각하는 대신
자신의 획기적인, 만족스러운 발상에만 골몰.
상호작용의 부조화 연속,
인지 장애 유발.
하여
관계의 유대감을 저버리는 반복적 행동으로
마침내 관계단절 야기.
이유를 따져 묻는다면!
상대를 묵살하는 일을 일상화하며 자신만 부상하고자 하는,
자신의 감정에만 너무 충실한 것!
Hey, 자뻑소녀!
R.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Patch Adams' 를 권해줄게요.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거나 인정 받으려면
범부들의 질서를 익히는 게 기본이예요.
다시
아이들 세계 속으로 들어온 지 4년!.
당구삼년폐풍월 (堂狗三年吠風月)이다.
급식실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자면
그 아이들의 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어리석게도 그러니까 아이들이겠지만
사방팔방이 평가의 레이저 작동중인 것을 모르고
부모 시야의 사정거리를 벗어나면 멋대로 마구 해방감 방출을 분사하며
자신들을 원색적으로 드러내고 마는 눈 가리고 야우웅
옳지 않은 생각이라고 도리질하지만..
문득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뉴스에 등장하는 상상초월, 엽기적 범행을 접할 때면
'이런 싹의 성장기를 거친 게로군.'
하는 아이들이 보일 때가 있다.
억제가 안되는 과한 충동.
인내심이라곤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자기밖에 모르는 무법천지에
분노조절도 제재받은 적 없는, 천지 무서운 것(부모 밖에) 없는 아이들.
부모가 너무 엄격함의 부작용(?) 일까?
대체 그런 거들먹거림의 행동들은 어디서 배워 온 것일까.
그렇게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낳고
'제 밥그릇은 다 제가 타고나는 법!
야, 나도 학창 시절을 그리 보냈어도 이리 잘살고(?) 있지 않냐!'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내와 배려 또는 독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열외시키고!)
하는 무용담 실은 영웅심리로 자기 위로에 빠져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성장기를 대물림하는 면이 있는 것일까?
아님
먹고사는 일이 팍팍하여 아이들을 돌볼 새도 없어 아이들이 방임으로 익힌 것일까?
아님
자식만은 잘되기를 바라지만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일까?
여타의 이유들이 뒤섞인 채 방.치. 수준의 아이들로 학교는 매일 몸살을 한다.
참아주고 이해하려 들고 배려도 듬뿍 실어보지만 다 소용없다.
이런 것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타성적 구태이기만 한 건가?
그저 놔두란다. 지들이 다 알아서 한단다.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들이..
'Let It be Me!'
'Own My way!'다.
변화 가득한 꿈나무인 아이들이라 질 수밖에 없는,
깜이 범부 주제였던 선생질하는 이는
매 학년 초 아이들의 선생님을 향한 간 보기를 체험하며
경험과 연식을 쌓아 다져지겠지만
이런 아이들의 가르침에서 무탈하게(?) 다음 학년으로 올려보내고
책임의 소지를 면하게 되면, '액땜했다.' 할 수만은 없는 법.
가르침의 에고지고.
햇빛 밝은 곳에서 보니 허연 눈썹이..
눈썹 염색하는 Hus에게 그냥 받아들이라는 일침의 말귀가
나에게 다시 돌아온 모양새.
화들짝 놀라 쪽집게로 뽑아버렸다.
아직 준비가 안됐어.
아니 죽을 때까지 안될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던) 주말 아침
아니 새벽이라 해야 할까.
어둠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골목길
냉기 가득한 달빛에 축여진 진한 pavement는
선명함을 더하고 굵은 흰색 줄로 그어진, 건반 같은,
횡단보도를 환하게 비추는 한겨울의 시린 가로등은 하품을 해댄다.
동 트면 발사된 빛 대신 자연광의 골목길이 내려다 보이겠지..
3rd 일요일.
밖도 못 나가고 들어앉아
모처럼 네식구 다함께 가족 오락실.
짜장 탕수육 시켜먹으며 원카드, 도둑잡기, 오목..
아고오..
빨리 일터로 나가야겠다.
4th 일요일.
또딸이 책상에 앉은 지 작심3일
아고오ㅜㅜ
보기만 해도 내가 지겹다.
또 어떻게 일년을 건뎌나갈 것인가.
꿈은 커서 첨만 다행이다.ㅋ
재수 있는 우리 집 역사.
올해의 끄트머리.
7시를 훌쩍 넘겼건만 내려다보이는 밖은..
거리는 휑한 인적.
바닥은 분무기 뿌려댄 듯 습기 먹고 꺼뭇꺼뭇.
자동차는 달리면서 파도소리 내고
올해의 마지막 등교 주간.
투덜이 자뻑소녀는 내가 다른 친구 봐주는 사이 또 내빼버렸다.
어이상실하고 서서 생각을 한다.
남은 이틀
이 아이를 어찌 대하는 것이 현명한 노릇인가..
다음날
오전시간의 아이들 하교지도하고 올라오니 이 아이가 웬일로 일찍 와 있다.
반성문이라도 들고온 모양새다.
"급식 먹으러 가자.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식단이더라. 돈까스와 브로콜리 스프?!"
고분히 따라나선다 했다.
한칸 건너 옆에 앉아 세상 모범생 같은 자세로 밥을 먹는다.
그러나 제 버릇 바로 나온다. ㅋ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이는 어깃장의 말투를 장전하고 '준비, 샷!'을 날리기 직전의 알림이다.
"선생님, 급식 전에 저 손 안 씻었는데요?!"
내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질을 하고 싶은 거다.
"급식실 입구에서 손 소독 했잖니?"
"그래도 손 먼저 씻고 와야 하잖아요.."
순서 잘 지키는 모범생 코스프레 ㅋ
"그럼 지금 다시 가서 씻고 올래?"
"......"
교실로 돌아오자 아이의 절친이 묻는다.
"선생님, 쟤 어제 또 도망쳤다면서요?"
"어떻게 알아?"
어제 몰래 도망치면서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고 했단다.
알면서 하는 옳지 않은 일들.
삼 세판의 도망질.
너에게 생산적 이득을 묻고 싶다.
아이는 또 묻는다.
"선생님! 지금 5인 이상 집합 금지 아니에요?"
"그런데?"
아이는 주위를 둘러본다.
"현재 너 포함 4인인데?"
"다른 애들 올 거 잖아요?"
"한 명은 전학갈 거라 어제 인사하고 갔고 다른 한 명은 목감기로 학교 못 와."
"선생님, 저 머리 아파요."
대놓고 언어의 술수를 쓰겠다는..
"보건실 다녀 와."
"아니, 그냥 집에 갈래요."
"그럴 순 없단다. 보건실 먼저 다녀오렴.
그리고 보건 선생님께서 네가 귀가가 필요하다 하시면
어머니께 말씀 드리고 귀가시켜줄게."
"그냥 간다니까요!"
언성이 한단계 높아졌다.
"그럼, 왜 남자애들은 마음대로 안 오는데요?"
"마음대로는 아니고 병원에 다녀온 소견서 제출하고 부모님의 연락이 있었단다."
다음날 어머니의 문자 한통. 하루만 쉬고 꼭 보내시겠다고..
이렇게 아이와 끝날을 맞았다.
잘하면 아이들에게 주는 간식을 달란다.
"마지막 날이잖아요?!"
누가 뭐랬나..
오전반의 한 아이가 말한다.
아무개를 가리키며 그 아이는 아주 못되서 놀지 말아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다.
안되애! 너희들은 꿈나무라 보호대상이다.
너에게 나빴다고 다른 친구에게까지 다 나쁠 수는 없는데
왜! 이 친구가 아무개랑 사귀기도 전에 편견을 심어주는 거냐!
다수의 아이들이 그런다며 아이도 지지 않고 말한다.
그래도! 너희들은 어떤 계기로 달라질 수도 있는데 단정해서는 안된다!'
고 말하지만 싹수에 대한 내심은 선생님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란다.
두근두근 ..
마침내 이별의 시간.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고 인사 나누고 헤어짐.
어머니들께 받은 감사의 문자들.
하여 나에게 내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일상의 일체들이 지독한 시간들이었어.
'고생 많았어.'
BY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