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묵화

쨍쨍하늘 2018. 1. 31. 18:08

묵화

                           김 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새해가 밝았다고 왕왕.

이렇게

맞은 새해는

사람이 되어가야 하는 일로

인내를 요했다.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축제(?) 같은

인생 속에 묻혀서

잊고 살고 싶은 일이건만

받아들임으로 시작해야 한다.

Hus가

오래 전

내 취향과 상관 없이

혼자 멋대로 사와

내게 건네준 모피코트가 아닌 ㅋ

모피조끼도 껴입었다.

애들이 끼다 내던진

장갑도 끼고 나섰다.

나의 이런 마음을

우주가 헤아린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 혹한의 날씨는

바로 나의 마음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 받아들임의 당사자는 내가 아니다.

우리 마딸이다.

Dry Finish 종결자인 마딸은,

지가 뭘 고민하기나 했나

할 정도로 차분하다.

충분한 성취감(?)이라고 반박한다.

내가 평가하기로는

도깨비 뿅방망이질이지만 말이다. 

2월에 가족여행을 떠날 계획도

오리무중이 되버렸다.

저 때문에

3년을 모두가 굶주렸는데..

 

 추위가 물러가고

미세먼지가 극성이라며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는

뉴스가 요란했다.

출근길 대중교통비는 무료란다.

아침 등굣길이

봄눈 녹는 아침이었다.

마을버스에 오른

어르신 한분이 기사님께 묻는다.

"오늘 아침 교통비 무료라는데

왜 교통카드가 찍히죠?"

기사님이 흥분하며

두서 없이 변명(?)처럼 말했다.

"갑작스러워서 우리도 잘 모르지만

나중에 신용카드에서는

차감되지 않겠어요?"

어르신은 명쾌하지 않은 기사님의

길게 늘어지는 열변을

자르고 싶은 듯 정중하게 말했다.

"어쿠, 그렇군요.

우리 노인네들이 뭘 아나?

뉴스에서 그렇다 하니 그런가 했지이..

알겄습니다.."

그러나

기사님은

그후로도

계속 명쾌하지 않은

반복적 사설을 줄줄..

들어주는 일의 힘듦을 절감하는

봄눈 녹는 아침의 해프닝이었다.

 

 오후,

보충수업까지 마치고

채점하는데만

두 시간이 더 걸렸다.

나만의 공간

교실 문을 잠그고

내려오자니 걷고 싶어졌다.

몇 정거장을 걸었다.

미세먼지 극심한 날이라는데..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이 분명 힘들긴 한데 싫진 않아.."

아이들과 지지고 볶을 때면

이런 노동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눈에 불을 켜듯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대리만족과 성취감에 취해

내가 Up되어서인지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년도

이 일을 GoGo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B거킹에 들러

스테이크버거도 먹었다.

이렇게

얼음 담긴 Coke을 마시는 일도

아주 오랜만이다.

혼자서 먹는 일도

아주 오랜만이다.

예전에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러

돌아다니던 어느 때를

재현하는 기분이었다.

But

나는 엄마라 나만 먹고

앉아 있을 일이 아니라서ㅋ 

바로

아래층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마트로 내려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기웃거리러..

 

 1월에는

마딸의 생일이 있다.

하필 생일날

오랜만의

친구와 저녁을 먹고 온단다.

여지껏

가족의 생일은 가족끼리였는데..

머리가 컸다는 증거이리라.

그렇담

나도 자식의 보호자라는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건가?

대신

다음날 집에서,

음식점에서 먹으면

양껏 못 먹으니 실리적으루다 ㅋ

저 좋아하는

한우를 실컷 먹게 해달란다.

멋대가리 분실한 실리주의자.

아니,

어쩜

나가 먹어봐도 뭐 그닥 끌리는

무엇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여튼,

주말에 마트에 들려서

우리가

외식했을 때의

비용만큼 한우를 샀다.

아스파라거스, 양송이 버섯,

양배추, 새우도 듬뿍..

우리의 고기 식사 뒤에는

반드시

볶음밥이 있어야 하니까

볶음밥에

단호박과 당근도 넣어

구색을 맞추었다.

후식으로

저 좋아하는 체리도

잔뜩 내놨다.

고기 귀신인데 고기 양에 질렸는지

필라테스 간다고 사리는 건지

생각만큼의 양에

손을 대지 못했지만

대신 설거지 도와주면서

"잘 먹었습니다." 한다.

 

 35년 만에 고교 동창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그동안의 서로의 여정에 대한

신고식이 불문율.

십 년도 훨씬 전에

이혼하고

아들 둘 데리고 산다고 했다.

지금은

8년 된 같은 처지의

동갑내기 애인이 있다고 했다.

예쁘기보다는 귀여워서

M.라이언 같은 분위기라

인기도 많았었다.

지금은

논술 선생이란다.

아, 맞다.

예전에

이 친구한테 끌려서

시(詩) 쓰는 클럽에 들어갔었었다.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하자니,

그 친구는

표현 방식에 있어

감정과 모션이 풍부했다. 

덕분에

나는 건조한 사람 같았다.

그 친구는

내가 아주 밝았고

개성있는 친구라고 기억해줬다.

"나? 그래에.."

그때는

나의 개성있는 삶에

집착한 거 인정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평범'이

내 인생의 모토라

누군가

나를 향해 개성

어쩌구 하면 그냥 싫어진다.ㅋ

그러나

현재?

내키진 않지만

'개성과 평범사이'

내가 공존하고 있는 건 아닌 지.

 

 엄동설한의

절정기를 맞은 1월의 막바지.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망자가 죽음에 가까웠던 즈음의

스토리를 들어주는 일과

나의 유사한 경험담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짧은 조문(弔問)의 시간에 예를 갖춘다.

우리 엄마와 같은

온갖 의료고문(?)에 시달리시다

의미 없는 생명 연장술에

대한 남매간의 잠시의 갈등.

맏이인

내 친구가 이성적으로 막아섰고

그래서

서서히 임종하는 순간까지

온 자식들이

엄마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발인은

올 겨울 최고의 한파를 예고하는 날이란다.

울 엄마..

더위 엄청 싫어했는데

더워도 더워도 끔찍이 더운 날,

장례와 발인을 마치고

뜨겁디 뜨거운 화장을 끝내고

한여름에 차가운 땅 속으로

안치되는 영면식을 가졌다.

우리의,

아니 나의 떠남의

시간은 얼마나 남은 것일까..

 

 수영을 마치고

나온 토요일,

오랜만에 퍼머를 했다.

풍성하던 머리가

어느 순간부터

착 달라붙는 것이

추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흰머리도

눈에 띄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코팅도 했다.

수영장 어르신들은 나를 보면

"얘, 애기야~" 하시는데..

나는 아직도

청춘이라 하시는데

자꾸만

하얘져 가는 나의 청춘.

 

 모처럼

혼자 덩그러니 남은

일요일 한낮,

오랜만에

대청소를 시작했다.

대청소답게

구석의 먼지들이

아름아름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

그동안

집안 일 도와준다고

생색내던(?) 마딸이 괘씸했다. ㅋ

 

 삼청동에서

그룹 전시회를 준비하는

남편을 따라 대리기사로 나와

빈둥거린다는

친구를 만나러 인사동으로 갔다.

귀가길.

초저녁을 막 지났을 뿐인데

외국의

여느 저녁처럼

불을 켠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아버린 것에 놀라

돌아본 거리의 휑함은,

섬득하기까지 하여

발걸음을 빨리하다 못해

마구 달리게 했다.

저녁나들이는

나의 연중행사다.

그런데

요즘은 연달아 잘도 나간다.

얼음폭탄이

뇌관을 관통하고도 남을  

칼바람의 거리는 

길고 긴 추위에 지쳐서인지,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머리 속으로 파고 드는 느낌이면

왠지 상쾌하기까지 했던

기억들도

'정도껏'에서 너무 벗어나서인지

알코올에 휘청대면서

그 힘으로

이 냉기의 거리를 녹일 것 같은

화이트 컬러들의 모습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애환이었으며

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허연 수증기들만이

거리를 헤집는

어두운 밤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황량.

 

 방학에는

오전에 일을 해서

수영을 오후로 다녔다.

첫만남이지만

선생님부터 회원들

모두

반겨주셔서 좋았다.

수영 마지막 날이라고

오리발을 끼긴 했지만

30바퀴 이상을

정주행 하자는

앞 분들의 리드에 끌려

쉬지 않고 달리다

집에 와서는

몸살처럼

끙끙 앓으며 잤는데

아침이 개운하다.

여름방학 때,

다시 뵙자고

길고 아쉬운 인사를 했다.

새해부터 이별이다. 

우리 또딸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친구들과

살짝 (같은 동네 옆 학교로)

이별이다.

울 또딸의

졸업식날은 내가 못 간다.

마침

일하는 학교의 종업식이라.

'또딸, 니가 그리 바라던 워킹맘.

그 너의 워킹맘은 

니 졸업식에는 못 간다만

뒤풀이는 뽀다구나게 해주마.' ㅋ

20년만의 재사회화에도

전설이 된 엄마처럼 ㅋ

너도

자신감 있는 생을 살도록!

쓰디쓴 인내에 쓰러지지 말고

달콤한 열매의 결실에

환한 미소 지을 수 있는

고교 3년

그리고

그 이후가 되기를 바란다.

 

 Hus의 가족톡

'30년만의 개기월식 보게

모두 양재천으로 나올래?'

문자는 청류형이나

이건

틀림 없는 강요인 걸

Hus만 모르고

모두는 다 알고 있는 사실 ㅠ

안 나가면

겁나게 삐져서

후사를

골치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다.ㅋ

      Hus 덕에(?)

      개기월식, 개기일식,

      일출, 일몰까지

그것도

첨부터 끝까지 다 봐줘야 했다.

마침내

달이 모두 가렸다.

서두르는 내 발길에 

Hus가 한마디 한다.

"달이 다 가려지고

그 자리가 발갛게 될 때까지."

"아빠, 우리 이젠 우주 쇼 다 본 거지?"

마딸이 웃으며 묻는다.

"달무리는 못 봤잖아?!"

가족끼리

우주쇼 볼 행사가 하나 더 남았다.ㅋ

모처럼

혹한이 잠시 가라앉기는 했지만

그래도

추운 겨울밤인데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그니까,

충분히 베란다 창 열고 볼 수 있는 것을.."
 Hus가 말한다.

"그건 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이!"

새해

첫달의 끝날은

이렇게

범우주적으로 마무리하면서.

 

 Welcome 2018.

올 1월의

굿바이 송은

1회 대학 가요제 곡인

♬) '달에게'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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