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안도현
그 여름 내내
장마가 다 끝나도록
나는
봉숭아 잎사귀 뒤에 붙어 있던
한 마리 무당벌레였습니다
비 그친 뒤에,
꼭
한번 날아가보려고
바둥댔지만
그때는
뜰 안 가득 성큼
가을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코 밑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돋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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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 왈,
자신에게는 지고지순하다거나 아름답게 사무치거나
안타까워 절절할 것도 없는,
새삼 뒤돌아봐도 아쉬울 것 없는,
그래서
사랑인 줄도 몰랐던 어리석은,
그럼에도
사랑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는
어이없는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고.
Maybe,
그건 나만 바라봐주던 상대에게
내 편의대로 기억할 것이 너무 많은
오랜 세월을 듬뿍 담은
정(情)같은 것이 녹아 있기 때문 아닐까?
올 겨울 추위가 매섭다.
일주일간의 휴식.
Term Break!!
일터로 나가는 일상에서의 잠시 휴식.
여유롭고 신선한 (추워서 웅크러들게 했지만)
아침에 혼자서 음악을 듣는 일은 황홀지경이었다.
익숙했던 습관이었는데 이 또한 오랜만이라서 그렇다.
내가 중학생 때, 너무 보고 싶어했던 영화
'Grease' 의 OST
♬)'You're The one That I Want' 가 나온다.
누군가의 좋아죽을 뻔했을 첫사랑에 받친다.ㅋ
중학생 때 우리나라는 엄청 추웠다.
겨울이면 영하 십몇도의 눈이 내린 빙판길이 일상이었고
차들은 반드시 체인을 끼고 달려야 했으며
눈으로 인한 등교길이 불가하여
임시 휴교령이 내려진 일이 있었던
그런 겨울이 느껴지면서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BUT
내 심보가 간사한 건지 며칠을 늘어질대로 늘어지면서
포식을 일삼은 탓에 살도 불기 시작하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의 무기력이 조여옴을 느꼈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녁 시간을
무력하게 보내는 후유증 같다.
이렇게
휴식이 시작된 어느 일요일,
추운 거리를 밤까지 함께 활보한 마딸이 말을 건넸다.
"엄마, 올해는 참 다채롭게 지나가는 것 같아."
"너한테는 뭐가 그리 다채로웠는데?"
한가지로 꼭 집을 것이 아니란다.
이를테면, 어떤 일중 실패라고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전화위복의 반전으로 나타나
기회가 된 일이 여러 번 있었단다.
올 한해를 돌아보자니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우연히 일을 얻게 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더불어 자신감도 회복하고.
처음은 미비하였으나 어쩜 나 혼자
풍성한 한해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뭣보다
북한도 이들이 무서워 못 쳐들어 온다는 중2병을 2년,
아니 중학교 내내인 것 같다.
심하게 앓던 우리 또딸이 마침내 아빠의 품 안으로
이쁘게 다시 안기기까지 온 가족이
덩달아 열병을 앓는 심정이었다.
모든 불만의 화살을 아빠한테 쏟아낸 탓에 힘들었을 Hus.
Hus는 인내심 하나는 타고나서 또딸의 이런 투정을
무방비 그대로 받아내고서야
또딸을 예전처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과히 ♬)'Open Arms'라 할만.
그래서
다시 성공적인 부녀로 돌아온 것 같다.
또딸이 마음을 열고 난 어느 날,
Hus가 또딸에게 저녁 먹고 산책을 하자고 했다.
좋다고 흔쾌히 따라나서는데 내 가슴까지 뭉클했다.
또딸이 어렸던 어느 때, Hus가 문자를 보냈단다.
"또딸, ○○를 ○○해~"
하자 또딸은,
"안돼, 엄마가 ◎◎로 하랬어."
"아빠 말 들어. 아빠가 대빵이야."
또딸의 즉답이 왔다며 Hus가 보여준 문자.
"아빠! 대빵 아니야.." 가 생각났다.
물론 나도 대빵은 아니다.
대빵은! 대빵 하고 싶은사람이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번 산책길에서도 Hus는
또딸에게 자신이 대빵임을 재차 상기시키려 했나보다 ㅋ
또딸이 키득거리며 전해준다.
"아빠는 엄마를 한방에 이길 수도 있지만
언제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고 또 양보하는 거래.
그래서 내가 박장대소하면서 말해줬어.
그래, 아빠가 그렇게 해서라도 위로가 된다면 그렇게 해.
근데 엄마, 이번엔 아빠가 진실을 말하더라.
사실 엄마가 위협적이긴 하대.ㅋ
엄마를 이길 사람 많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
글치, 엄마는 싸움을 싫어하잖아.
엄마에게 싸움이란 사소하지 않지.
곧 대전(大戰)인 거니까.?ㅋ
또딸로부터 시작해서
또딸 자신이 정리하고 받아들인,
결자해지의 이 평화에 감사해하며 올해를 접게 됐다.
그래서
두 녀석이 가고 싶다는
전주 한옥마을을 온가족이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강추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털조끼를 입어서 추위를 견딜만 했다고)말이다.
또딸은 남자 한복을 입고 싶다는 걸 말려서
여자 한복을 입게 했다고 투덜거렸지만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이를 올린 걸 보면
표리부동의 반항기가 일소됐다 할 수는 없겠다.ㅋ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일.
나는 그 마을 속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과 전동 성당이 신선했다.
최명희 문학관에서는
며칠의 무기력 탓인지 잠시 활자홀릭이 발동했었다.
토요일 아침,
여전히 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
주중에 어둠이 내리려는 텅빈 학교를 서둘러 나올 때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과의 코믹한 해프닝도 좋고,
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도 아주 감사하다.
BUT,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른 아침의 등교길에
모락모락 빵 굽는 냄새는 감동적이었는데
한파 연속인 이 아침에는 느끼하게 파고 들었다.
참 변덕스럽다.
그럼에도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들이 말하기를
내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단다.
하여 내가 모르는 내 이면의 나는그러하다고
받아들이고 싶은 아침이었다.
변덕에 받치고 싶은 노래.ㅋ ♬) Try To Remember.
맹추위를 떨치는 일요일, 한적한 길상사에 갔다.
어린 시절의 겨울 한 때.
아이들 가르친답시고 성북동을 누비던 그 어느 때 말이다.
그때는 길상사가 아니라
나 같은 조무래기는 근접할 수도 없는
'대원각'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미처 녹지 못한 눈덩이들이
구석구석 꽁꽁 얼어붙어 있고
평일이 북적대던 곳이었나 보다.
색다른 한적함은 도심 속의 고즈넉함을 부추겼다.
아침,
신문을 가지러 현관문을 열었다.
어둠이 걷히기 직전의 아침,
주차된 차들 위의 두께감 가득 실은 눈들..
가로등도 채 꺼지지 않은 반사빛의 찰라를 Shot했다.
정말이지 겨울다운 겨울이다.
또딸이 등교하려 하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법 함박눈이 내린다.
낮까지 내린단다.
나의 제자들이 신나서 환호할 것이 그려진다.
지난 달,
살짝 첫눈 같은 것이 내릴 때 아이들이 그랬다.
"선생님! 첫눈이에요!
우리 잠깐 운동장에 갔다오게 해주세요!"
달랑 50분 공부하는데
눈 구경하러 4층에서부터 달려나간다?!
그냥 공부를 하지 말자고 하세요옴..
"그러다 우리 공부 끝날 때,
눈도 그치면 선생님이 책임 지세요!"
어구우, 책임?! 못지지이.
내가 어떻게 너희들까지?!
나는 이미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는데
어찌 너희들까지?!ㅋ
어유, 고롷게는 못하지이.ㅋ
아이들의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표정들이 스친다.
BUT
함박눈이 가져다 주는 월요일 아침 등굣길의 발걸음.
이 아이들에겐 온통 폴짝폴짝 뛰고도
남을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덩달이가 된다.
딱!
지금 바로 요것뿐?!
살아보니 그건 억지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기회는 언제나 세상에 그것도
Upgrade된 채로 천지 빛깔이었다.
어둑한 아침,
오랜만에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 있자니
나도 뭔지 모르게 설렌다.
가족 모두 실신한 사람들마냥
쓰러져 자는 일요일 이른 아침,
모두 속의 혼자인 것 같은 나.
무료추천 영화 '럭키'를 봤다.
자신이 누군인지 몰라
잠시 자신감을 상실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의지마저 상실은 아니라는 거.
저녁, 밥하기 싫어하는 내 뜻 받잡은(?)
Hus가 외식하자고 했다.
예전의 크리스마스 이브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의 저녁거리.
음식점은 가족들의 식사 모임으로 가득했다.
이 강추위에 푸짐하게 식사하고도
녀석들은 설빙 타령이다.
푸짐한 디저트를 먹고
또 크리스마스케잌 타령.
저 녀석들한테는 세상이
그저 달달하기만 한가보다.
크리스마스 날은
'공부파업' 이라 일찌기 공언하던 또딸은
잔뜩 차려입고(?) 외출하고.
나머지는 청담동의 SS 버거를 먹으러 갔다.
상술에 속지 않으려고 버텼건만
나쁜 예감은 정말이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현실감.
밀크셰이크를 쪽쪽 빠는 마딸을 보자니,
나의 중학 시절이 지나갔다.
그땐 L데리아의 밀크쉐이크가 최고(?)인기였는데.ㅋ
추워죽겠는데 만복감이 불쾌해서 도산 공원을 둘러봤다.
참으로 오랜만.
오후,
추억의 팝송에서 O.핫세 & C. 밋첨의
'Summertime Killer'의 OST
♬) Run And Run이 나온다.
이 또한 얼마만에 들어보는 배우들의 이름인지..
아침 음악 프로에서는
Shocking Blue의 ♬) venus가 나온다.
아침 등교길을 준비하는 또딸에게 말했다.
"이 노래, 엄마가 파릇하기 그지 없는
이십대 때 나온 노래다."
액션까지 취하면서 춤까지 출 기세루..ㅋ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말했다.
예전에, 아빠가 말야.
엄마한테 맨날 비너스라 그랬는데 ㅋ
"이 노래? 엄마가 20대 때 나온 노래야."
나를 바라보는 또딸의 눈빛은 측은함이었다.ㅠ
딱 맞게 산울림의 ♬) '청춘'도 나온다.ㅠ
Hus의 퇴임식.
20년 넘도록 잘 벌어먹여줘서 고맙다고
쪼옥!도 해주고 등도 토닥토닥 해줬다.
돌아서는데 코끝이 찌잉했다.
함께 한 우리의 오랜 세월.
말년을 향한 서로의 격려일 것이다.
그눔의 세월 참..
올해는 보내기 싫다.
딱 두 달만 뒤로 돌아가고 싶은 안타까움이
미련 한가득 남는 해다.
두 달만 뒤로 가면 분명 착오 없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ㅠ
우리 마딸은 나의 이런 안타까움을 알까?
본인의 속을 드러내지 않아
가끔은 미궁 같다고 여겨지는 아이.
그 속을 홀랑 들여다 볼 수만 있어도 후련할 것 같은데..
올해의 안타까움이 멀지 않은 미래에(간절)
우리 마딸에게
성취감 가득한 미소로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며.
안녕! 2017.
이별송은 딕 훼밀리의 ♬) '작별'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