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
내 생 풍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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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부터 봄까지 눈을 맞다.
3월의
개나리 노란 세상은
지나친
꽃샘추위로 슬쩍 퇴장.
4월 초입,
최근
어느 해보다 쌀쌀했으나
벚꽃의 흐드러짐은
사계의
분명한 어느 때였고
5월이 되자
철쭉과 풀꽃들이 제 세상을 만났다.
눈이 퍼부을 때의
들뜬 마음도 꽃으로 비유되어,
그러나
눈이 주체이므로 눈꽃
벚꽃이 살랑바람에 날릴 때는
꽃이 주체라서 꽃눈.
주말,
잠시
산책로로 나가보니
제철맞이 꽃씨들이
솜사탕 찢어 날리 듯
영락없는 눈발 행세를 한다.
겨울의 눈꽃은
따뜻한 잔을 감싸게 하는 그윽함,
봄날의 꽃눈은 미소 품은 운치.
그윽함과 운치,
계절의 냉기를 품는 연속성.
5월 첫날
가평 친구 집에서
들판 천지와 친구의 꽃밭을
메우는 꽃들에 취해
1박 2일.
친구가 직접 키우고
따서 다듬어
준비해 놓은 싱싱한 두릅,
게다가
천지에 널린 나물 뜯어
고기에 쌈 싸 먹고 전 부쳐 먹고
다음날 아침 산책길,
해가 지면
접어놓은 우산 같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활짝 핀다는..
신기하여
들여다보게 되는 우산나물.
그리고
모르면 지나쳤을
또 하나 '고비'
털복숭처럼 솜털 가득 두른,
아기 솜털 마냥 고운 모양새,
싱싱한(?) 곰팡이 같기도 한,
울 엄마가 잘해 주던 나물.
봄이면
겉절이 맛나게 해 주던
돌나물도 천지였다.
엄마의 기억이 새삼..
그런데
희한하게
이런 자연을
사진으로 담으면
그 감동이 무색지경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바로 보기 힘든
빳빳하고 새파란 하늘은
그저 밋밋하기만 하고
천지 빛깔 총천연색의
다양한 꽃들은
순박을 넘어 촌스럽기까지 하니 원 ㅜ
반면
UHD 대형 스크린에 담으면
실제보다
더 섬뜩하게
제도칼로 깎아놓은 듯
눈을
아리게도 하지만
느끼는 아름다움은
백문이 불여일견일 따름이다.
그런 자연과 물아일체의 순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분명 (봄이었는데) 여름!
매번 속는 걸 알면서도
길거리표 과일 기웃ㅜ
차 트렁크의 (친구가 싸준)
두릅과 고비만
봄날을 가득 메운 여운으로 실려왔다.
자연에 취한,
공기 좋은데서는 안 취한다는
Hus의 (오랜만의) 과음,
나이를 속이지 말라는 으름장은
주말을 통째로 휘청이게 한다.
청춘의 기억으로 연명하는 여생.
32살 먹은 나의 첼로
나에게서 2년,
내가 유학을 다녀오는 5년 동안은
나 없이
엄마와 홀로 세월을 보냈고
나와 재회 후 일 년 여..
그리곤
결혼 직전
웨딩 사진 촬영하던 날,
나의 절친 네로 입양됐다.
절친 남편인 오빠는 나의 자식(?)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이들이
서울 작업실에서
가평으로 옮겨갈 때도
그리로 함께 딸려간..
또딸이
오빠 작업실에 처박혀 있다는
나의 첼로를 보고 싶다고 우겼다(?).
작업실 한 귀퉁이 창고에서
연식 듬뿍 담은 잿빛 먼지와 뒤엉켜
임박한 죽음을 재촉하는 행색에
또딸은
엄마의 역사를 이렇게
굴러다니게 할 수 없다며
집으로 가져오겠다고 했다.
데려가도 좋다는 오빠의 허락.
또딸은
나의 홀대(?) 받은 자식을
열심히 문지르고 닦았다.
집으로 가져와서(도)
닦아놓고 보니 수제였다.
또딸의 첼로보다 그럴싸하기도 했다.
또딸이 흥분하는 기세다.
그러나
세월의 흔적이..ㅜ
악기는 올드가 최고지만
엔드 핀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올드하다 ㅋ
악기 바닥 이음새 부분이 살짝 떴다.
수리가 가능하려나?
테일도 갈아야 하고
사운드 바도 손질해야 하지만..
잊고 살았던
나의 진주였던 자식을
다시
내 집에 들였다.
우리 집
막내가 살려서 데려와
거실에
나게 세워놨다.
또딸에게
울컥할 정도로 고마웠다.
지나가다 보고 또 보고..
가족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어쿠, 괜찮은데!"
그러게, 진작 데려와서
또딸 줬으면 좋았을 걸 ㅜ
모두들 나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로
덩그러니
나만 집 지키는 어스름 무렵,
휴대폰 어플에서
블루투스 스피커 타고
흘러나오는 추억의 팝송들이
'Back To The Future'다.
마딸 낳고 몸조리 중일 때,
겨울이라 문 밖도 못 나갔던 답답함.
그저
베란다로 내려다 보이는
작은 공원의 가로등이 밝힌
바깥세상만 흘깃.
밤으로 익어가는 짙은 저녁
바깥세상과 뒤섞인
재즈곡의 기억과
흡사한 뭉클한 밤.
밖은
분명
유혹이었다.
그런 유혹의 홀림도 잠시 ㅋ
미루던 4월 가계부 정리했다.
마침내
4월의 숙제 다 끝낸 후련함.
봄 산불과 지각생 단비
작년과 변함없이
건조한 대지에 온통 산불.
작년처럼
죽을 지경으로
초토화되어 가는 산에
목숨만은 연명할 수 있을 무렵
비가 내린다.
의사의 흔한 말귀,
'생사의 고비는 넘겼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라고 할
뭐 그런 야속한 봄비가
흥건하게
내리는 토요일 아침,
아이들 학원길 내려주느라
비 오는 주말의 동네는
늘 그렇듯
아수라장 수준.
집콕,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간데없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
그런 와중에
이태원이 만든 핫이슈..ㅜ
여튼
금식한 채로 병원행.
한 달마다 피를 뽑고 있다.
채혈 후 초음파까지..
간수치가 높은 이유는
지방간으로 추정된단다.
음주를 묻는다.
(한 달 통틀어 캔맥주 1,2개가 전부다.)
그러자
확 오른 체중의 원인으로 추정.
4년째 진료받는
신뢰 듬뿍인
의사 선생님의 권고.
'체중을 빼십시오'
월요일에 검사 결과 보고 처방하자신다.
귀갓길,
요란하게 내리는 비 탓에
그럴 줄 알고 신고 나간
맨발의 슬러퍼 등 위로
비에 튕긴 풀잎 조각들이
너저분하게 엉겨 붙고
질퍽하게 젖은 맨발은
푸욱 가라앉은 우울에
더 깊은 우울을 보탰다.
죙일 우울의 기세에 눌려
병자처럼 처졌다.
일요일 아침,
창을 열어놓으니 쌀쌀하다.
불어날 때의 체중은
껑충이더니
빼려 드는 체중은
요지부동이다.
나쁜 것들의 유혹은 가벼운 수긍,
그러나
그것들이
안주한 고집을 떼내는 일은
질기다는 고래 심줄이다.
모처럼 바쁜 월요일,
등굣길, 하굣길 학교 관계자들과
인사, 인사하는 하루.
12시 학교를 나와 병원행.
12시 반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란다.
1시부터
점심시간인 줄 알고
바삐
달려온 길이 무색했지만
얼른
구청에 가서
볼일 보고 환승하여 병원 앞.
2시가 되려면
점심 먹고도 남을 시간이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데
아무거나
한 그릇 후루룩.
그래도 남는 시간..
병원 입구에서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마냥
시계 보며 어슬렁.
덜 먹으면서
체중 감량 강조하시는 말씀.
끊었던 고지혈증 약 다시 처방 ㅜ
그러마 하고는
또딸의 아우성에
빵 봉지 들고 귀가.
젠장.
이젠
나의 일상 화풀이 대상이 된 Hus.
바로 "미안~"
문자로
갱년기 우울증인가 변명도 섞어 사과.
그리곤
바로 온 답문자에
또 퉁명시리..
더 열불 받아
거친 말귀들을 다시 쏟아낸다.
'할부지처럼 굴지 좀 마..ㅜ'
스승의 날
새벽부터
아니
금요일이
시작된 때부터인 것 같다.
죙일 비가 내리고
빗발이 굵어서 신발이 젖을 듯,
덧신 하나 챙겨서
맨발로 신발을 신고 등교.
등교가 연기되고 있는 학교.
그러나
나는
학교에서 근무 중.
한 학생의 톡을 받았다.
스승의 날이라 문자 했다고..(고마워요)
마지막에 덧붙인 말,
'이태원 가시지 마세요.'
내가
클럽 들어가면 물 흐린다고
바로
입장거부일 걸
이 아이는 모른다.
그러나
'오냐~'로.
이 아이도 몇 년째 만나고 있었다.
코로나로 쉬는 동안
유일하게 내게 드문드문
소식과 안부를 물어온다.
조모, 아빠와 사는 아이.
이 두 분과 학교가
공조하지 않았더라면
강제 전학 간 아이와
삐딱선을 타도
한참
엇나간 쪽으로 기울었을..
이제
머리 좀 컸으니 학교에서 만나면
그 번잡함 괜찮아지길 바란다.
봄장마
질려버릴 만큼
하루 죙일 쉬임 없는 굵은 빗발,
발바닥으로 한기마저 도는데
초록잎의
대롱대롱한 빗방울이
또 뭉클하게
여름 기운 안고 마구 밀고 들어온다.
되돌릴 수 없는 그 어느 때,
누구와도 함께이지 않았던
나 혼자만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
Princess Diana
다이애나에 대한 몇 편의 다큐 감상.
80년대
영국 사회의 결혼 방식이란
배우자가
못마땅해도 참고 사는,
즉 이혼을 꺼리는 삶이었단다.
서로의 배우자들은
대를 이을 아이를
두 명쯤 낳으면
가정의 역할을 다 했다 여기고
내연의 연인을 두기도 했다는..
그런 사회 속의 상징적 왕실은
스무 살 앳된 여인이
차츰 알아가는
배우자에 대한 애정의 갈구와 폭로를
이해 대신 분노로 처리.
왕실에서는 결혼식 때
아내가 순종 서약을 할 정도였다니.
(다이애나는 이런 순종 서약 대신
행복하게 살 것을 서약했다고 했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생애.
세계인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처절한 채로 요절.
그럼에도
다수의 정서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대로의
사회를 유지하며 살고 있고
찰스는
배우자의 도발(?)이라 여긴
정략결혼을 무르고
자신의
혼전 연인을 아내로 맞는
동화 같은
사랑의 결실을 현실화 중이다.
과히
사랑의 승리이건만..
왠지
자신을 희생양이라 하던
다이애나가
안타깝게 오버랩.
'아무것도 잃지 않은 당신은
제물이 된 희생양에게 도의적인 양심은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찰스의 입장으로는,
'왕실을 지키기 위해
차지하고 싶은 진정한 사랑을 우선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사회의 상징적 지킴이로서 최선을 택했노라!'
할런지도 모르겠다.
보수의 허구 내지는 허상.
부부의 연이
종족보 존 만이라면
정말이지
너무 원시적이고 反인간적이다.
21C에는
이런 불행을 안고
반평생 이상을 사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개인의 우선 가치로 평가될 일이라..
전체를 통제하는데서 오는,
예측하지 못한 무엇이
또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개똥참외
요즘은
맛나게 먹을 과일이 마땅치 않다.
참외 한 봉지 사고는
파파야 참외도 한 팩 샀다.
열대 과일 파파야와 접붙인 건 줄 알았다.
Hus가 보더니
청개구리 참외란다.
껍질 잘라내고 먹자니..ㅜ
어릴 적
울 엄마가
가끔 사 왔던 개똥참외다.
Hus가 먹으면서 어릴 적을 곱씹는다.
"이거 맛대가리 없어서 마구 굴러다니던 건데..."
게다가
성주 참외의 아삭함과
바로
맛 비교가 돼버렸으니..
이름도
세계적으로 개명하여
다시
등장했건만
마트의 상술에 놀아난
이 개똥참외의
천덕꾸러기 흑역사만 소환.
그러나
좀 물컹했지만 먹을만 했고
어릴 적 여름의 어느 때를
기억하는데도 괜찮았다.
하여
올 5월의 이별곡은
구전가요로부터 전해졌다는
♬) '타박(복)네'다
BYE! 2020'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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