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저항과 풍류

쨍쨍하늘 2019. 6. 30. 09:20

 

 

                  저항과 풍류

 

                         최명희

 

어쩌면 이 두가지는

아주 상반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미 가진 자는

저항하지 않으며

억울할 일 없는 자

혹은 세상을 거머쥐려는

욕망으로 들끓는 사람의

검붉고 걸쭉한 혈관에는

풍류가 깃들지 못한다.

 

풍류는 빈 자리에 고이고

빈자리에서 우러나며

비켜 선 언덕의

서늘한 바람닫이 이만큼에서

멀리 앉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니면

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둘은

한 바탕  한 뿌리에서 뻗은

두 가쟁이다.

 

                                   (혼불 중에서)

 

*****************************************

 

 6월..

시작이 순풍이다.

뭔가

꼬인 것 같아 고민하려 들면

금세 실마리가 가뿐하게 보인다.

그렇게 맞은

6월의 첫 일요일 아침. 

 

 마딸이 선물로 받았다는

CGV 영화 예매권이

달랑 한장이라 애매하단다.

나 달라고 했다.

얼마 전,

내가 선물로 받은

설빙 기프트 쿠폰과 맞바꿨다.  

내친김에

가장 핫하다는 '기생충'

예약도 해달라고 했다.

8시 20분 영화를 보겠다고

강남역으로 나섰다.

막힐 때는

1시간도 걸리는 거리다.

공휴일의 이른 아침..

15분만에 왔다.

너무나 일찍 왔다.

덕분에 느긋하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한 아침을 구경했다.

 

 비오는 목요일,

그것도 이른 아침,

혼자서 영화라..

좀 그럴싸한 것 같다.ㅋ

영화가 끝나고

꾸물대는

하늘에 실려 명동으로 갔다.

지난 번처럼

얼큰 만두국 하나를

후루룩 비우고

명동 성당으로 향하다

스.벅 앞에서 멈칫.

카푸치노 한잔 To go로.

성당은

오늘도 결혼식이다.

웃음이 오고가는

분주한 인파를 비켜나서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성당 뒷편 벤치에 앉아

카푸치노를 한 모금씩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자니

(익숙한 모양새들이지만)

새삼스러움새로움의 흘깃거림이다.

붉은 벽돌 건물들,

잿빛 하늘,

초록이 영글은 나무들,

작은 태풍급일 거라는

일기 예보답게

바람이

휘이익 끈적거림을 몰아내고

휴식을 넘어 안식 같은

홀가분하고 차분한

푸욱 가라앉는 기분도 함께.

그리곤

무언가

뭉클하게 향내음 같은 것이

밀고 들어오는데

여름에 취한 듯 아찔했다.

여러가지로 옛날 생각

많이 나게 하는 하루였다.

 

 예전,

그 쟁쟁한 집들 다닐 때 말이다. 

참모 도우미(는 격을 따져

적어도 고졸 이상을 요구했다.

어떤 집은

대학 중퇴자 (or 전문대 졸업자도 있었다.)와 

(초등 저학년까지의) 아이들의

돌보미는 상주하지만 

대개

요리사, 청소부, 기사는 출, 퇴근이다.

그 넓은 집에

도우미가 한명이면!

도우미 이모님, 몸살하신다.

그리고

마나님과 아이들 기사님조차 

회사에서 공채 선발이다.

 

 그들은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잠시

강남의 아파트에

주거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들만의 주택으로 돌아갔다.

2층은

그들 가족들만의 분리된 공간이다.

안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못 올라간다.

1층은

그 집안의 어른이 오시면

묵을 수 있는 안방이 평소에는

텅빈 채로 방치되어 있고

그들의 손님을 맞거나

가족끼리 식사 후에

가볍게 쉬었다 올라가는 거실,

그리고

주방과 다이닝룸이 전부다.

너저분한 주방이

다이닝룸과 연결된

어느 공간 안에

큰방처럼 깔끔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서민들의 주거지와는

분명 차별화된 반지하(?)는

홈바나 홈시어터,

또는

미술을 공부하신 마나님들의 작업실,

그리고

곳간 같은 방들이 있었다

 그들의 재력과 명예를 통치하시는

시어른의 방문이 있던 날..

나에겐

평민의 삶이 곧 행복이라 감사하던

어느 날도 생각난다.

이 시부님이 직접  모대학에서

며느리감으로 뽑아왔다는 

인물 좋고 집안 좋아

늘 자신감으로 충만한 며늘,

시부님 앞에선 바짝 세운

바른 자세맨이 되어

잠시 그 앞을 지나는 나에게

눈길도 못 건네고

얼음처럼 앉아있는 모습이란.

이 댁 뿐만은 아니었다.ㅜ

부부의 재력의 기울기가 큰 경우는

상대쪽 배우자도

이처럼 쩔쩔맬 정도..

돈의 어마한 위력의 세계였다.

 

 대접은,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을만한

푸짐한 모양새가 아닌

각자의 앞그릇에 디저트 양이다.

음식

상대에 따라 사용하는 그릇

아주 엄격하고 인색해서

도우미들이

함부로 음식에 손을 대거나

주인장들이 사용하는 그릇은

사용할 수도 없다고 했다.

평민들이 값진 그릇 장만해서

잘 모셔뒀다 손님들 오면

뽐내듯 내오는 장식품과 달리

자기들만을 위한 그릇이라는..

그럼에도

그런 집에 취업하고 싶은 이유는

분업화(?)된 노동에 몸은 덜 고되면서

임금이 높아서라고 했다.

 

 그들과 다른 낯선 이가

집에 드나드는 것을 싫어해서

지인의 검증된 소개를 받는 일을

선호하는 것은 맞다.

한번은

이 쟁쟁한 마나님의 소개로

바로 뒷집의

아이를 가르치게 됐다.

이 쟁쟁한 마나님네보다

재계 서열은 한참 아래였건만 ㅜ

신천지를 보는 것 같았다.

아이 전용차가 따로 없이

사모와 함께 BMW를 타는데

거리의 특성상

나를 사거리 나폴레옹 빵집 앞에서

Pick Up해야 했다.

그런데

이 마나님, 자기 차로

나를

실어나르는 것이 못마땅하여

지금으로 치자면

그랜저급인

Super Royal Salon을 준비했다.

'아고오, 나한테 대접하는 접시도

새로 장만하셨겠다.'

그댁 기사님도 웃고, 나도 웃고

더 웃긴 건

20세기 말에

것도 새파랗게 젊은 안주인을

'마님' 이라 부르게 하는 일이었다.

평민들의 실소.

그런 마님이

수업료도(잊고) 안 주길래

밀릴 것 없는,

그들 세계에서 일명 잘나가는

대기자 가진,

요즘으로 치자면

스타강사였고

풋풋한 20대 중반인데!

당당하게(?) 말했다.

       얼마냐고 묻더니

바로 지갑의 수표뭉치에서

몇개를 꺼내 내게 건넸다.

자식 선생질하는 이에게

하는 꼬라지가 이리

형편 없기는 역대급이었다.

게다가 그댁 요리사는

나를 보더니 반가움 듬뿍..

아직도 B댁을 가냐고 물었다.

그댁 회장님이 자신의 음식 맛을

아주 좋아하신다고..

그런데 왜 그만두셨을까?

이 요리사는

출,퇴근비도 아까워

주인 집에서 상주하고

십 원 한닢도 지독하게 굴다

다른 도우미들과 마찰이 컸단다.

결국

대판 싸움 끝에

쫓겨난 신세였다는

다른 도우미의 전언.

한달쯤 지났을까

B댁에서 이 요리사를 만났다.

마침

이집 마나님이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단다.

이번엔

여직 그 뒷집을 가냐고 물었다.ㅜ

 

 어린(?) 나이에

부자들의 인생 체험 하며

몇 년 신나게 쫓아다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공부하기로 하는 바람에

모든 걸 정리했다.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 뒷집은 부도 나서

부랴부랴

집 팔고 미쿡행 했다고.

광기에 가깝던 갑질은

망조의 기운으로 평정됐을라나..

 

 뭐 부자라고

다 형편 없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닌 것을 모를까.

처음 만남부터

동네 아주머니마냥 수수했지만

포스가 남다른

아주 괜찮은 내조자이면서

회장님의 사업 동반자로서

전두지휘하시는 분은

지금도 가끔 TV에 비쳐질 때,

'그럴 만한 인물이었다.'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사는 일.

운명일지 숙명일지는 모르나

타고날 때

이미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그릇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만큼의 그릇을 넘쳐버리면

탈이 나거나

지나침을 극대화하면

이승의 운명을 달리하는.

하여 

나의 그릇을 묻다.

 

 맨주먹으로 생고생하며

물질적 & 이상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친구네 부부.

사업확장에 심하게 무리가 온 모양이다.

'까르르..'

잘 웃어대던 친구가 시무룩.

얼마 전 만났을 때,

전화 통화할 때,

문자를 할 때도

말도 줄고 웃지도 않는다.

요 며칠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두렵기까지 하단다.

나의 이유도 없는

비현실적 무기력과는

쨉도 안되는 것 같다.

현실의 꼬임

이상을 쫓는 발길질을

한방으로 끝내버리는

건조함의 위력이랄까.

사는 일이

가장 단순한 곳에서부터

정렬이 필요함을 알리는

본질명료의 이유일 것이다.

 

 체중은

나의 학생들 만큼

불어나는 것이

고민스러워 

주말을 뒹굴대다 수영장으로 갔다.

파랗고 맑은 하늘

햇볕이 제법 따뜻함을 넘는다.

야채가게로 자동 발길.

주말에

반찬 열심히 만들어야 해서

온가족이 좋아하는 깻잎.

노지에서 그냥 따온 모양새인데

저렴해서 집어왔더니

아고오 ㅜ

씻어도 씻어도 끝이 없다.

'손질된 깻잎을 사왔더라면'

하는 후회와 이리 씻어대야 하는

나의 노동력과 물 사용료의

감가상각비 비교까지 하게 되면서..

그러나

알싸한 향내로 일소!

군침을 돌게 한다.

저녁 메밀 비빔국수에

듬뿍 때려! 아니 잘라넣어ㅋ

맛나게 온가족이 냠냠.

엄마의 손맛은 가족의 행복으로 안착.

 

 하긴

우리 가족이

깻잎을 좋아하게 된 것도

우리 엄마 때문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천에서

생전 지어본 적 없는,

(노년엔 텃밭 가꾸기를 즐겼지만)

넓은 텃밭에서 온갖 농사를

재미나게 짓다가

우리가 가면

그렇게

노지에서 듬뿍 따서 건네주는

그 깻잎의 향이 어찌나 알싸하던지

꼬맹이였던

아이들까지 냠냠하기 시작했던

깻잎 사랑의 유래.

잠시 

고집스럽던 엄마가 지나간다.

여름의 향기들 속에 담긴

나의 역사.

 

 6월,

딱 절반의 일요일 아침.

♬) Just Two Of Us가 나오는데

이유 없이 뭉클하게 

'So Sweet' 이다.

상큼하게 파란 하늘을 담은

아침이라서 그런가.

요즘은

빳빳하게 파란 하늘이

여름 사랑을 부추긴다.

 

 일주일이

후다닥 내빼는 거 같다.

언니.

남들은 자매끼리 사이가 좋다지만

우린 아니다.

한부모의 자매가 맞지만

달라도 너무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못마땅해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작년 수술 이후,

별 이상은 없다는데

먹지도 못하고 아름아름

말라가고 병색이 짙다.

물보다 진한 무엇의 발동..

      그런 언니네와 우리 부부의 만남.

평소에 장어 좋아해서

장어로 식욕을 부추기고자..

자기가 잘 가던 장어 집에 들어서자

숯불과 고기 냄새가 비려

바로 음식점을 나와야 했고

뱅뱅 돌아

엄마 입원했던 대학 병원 앞,

소문난 중국집 타령.

또 거기까지..

고맙게 6년 전쯤인데

여전히 문전성시다.

누룽지탕 타령도 했는데 잘됐다.

BUT 달랑 몇 숟가락이 고작.

숟가락으로 가득 담으면

한 숟가락도 안되는데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고

형부가 한시름을 놓는다.

에고오 ㅜ

뜨거운 바깥 공기는

외려

따뜻해서 좋단다.

내친 김에 자유로까지.

돌아오는 길,

울렁거림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에

잠시 한강변으로..

근처의 텐트촌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

이번엔

바비큐 숯불냄새가 견딜 수 없다고.

몇 모금 물을 마시고는

집에 얼른 가 눕고 싶단다.

저녁,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먹거림까지 섞인 투다.

모처럼 언니 기분이 아주 좋다고

너무 고맙단다.

자식이 감사한 이유.

 

 벌써 6월 말.

4월에

한국 온 친구는

이제

3개월 다 채우고

시드니로 돌아간다고.

어깨 관절로 고생 깨나 했는데.

다들

나이 듦을 절감케 하는 일.

이 친구 덕분에

4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삼청동행이었다.

올 일년이 다 가도록

난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동은 자유로우나

작정하지 않고는 이동 반경을

크게 벗어나려들지 않아서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6월의 마지막 토요일,

트럼프의 방한이 있는 날,

천막은 옆 블럭으로 비켜나 있고

광장은 말끔했다.

저녁 무렵,

귀가는 인사동을 지나 종로로..

익명의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는

왜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6월의 끝날이자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여느 일요일과 다를 바 없다.

모두들

지친 심신의 피로를

잠으로 영양제 삼듯

해삼처럼 푹 퍼진

유체이탈의 달콤한 늦잠ing

오후,

남북 정전협정 66년만!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쪽 땅을 밟는.

그리고

남,북,미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나다.

6월 한국전쟁이 상기되지만

평화로운 일요일은

또 놀라운 역사를 썼다.

(반평생을 살다 보니

이런 장면을 접하게 되네.)

6월의 일요일은 역사적 주시가 필요.

 

 BYE.

여름의 쌉사름한 향기에

뭉클해져 오는 가슴으로

2019' June을 보낸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낙비  (0) 2019.08.31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0) 2019.07.31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5.31
나무  (0) 2019.04.30
꽃가루  (0) 201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