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재료
이병률
오늘은
약속에 나가
사람들과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왜
오지 않는 거냐고
이미
약속시간으로부터
십분이 지나있었다.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황급히 일어나
간판을
다시금 확인하고
옆건물로 들어가
사람들 사이에 다시 앉았다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이 좁디좁은 우주에서
우리는
그리 되었다
이 바다의 물을 다 퍼서
다른 바다로 옮기는 일들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내뱉은 말들이라
가능했다고 믿었다
꽃이 꽃을 꺾는다거나
비가 비를 마시게 된다는 식의 일들
우정의 사랑이라든가
그로 인해
어제는
가볍지 않았다는 기억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이대로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정만으로
이제
감각도 없는 굳은 살들을
떼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의 재료들 사이에서
무조건 속의 조건들을
골라낼 줄 알게 된다면
저편에
또 다른 나 하나가 생성된다는
잔인한 가정을 믿기도 한다면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무언가라도 되어야겠는데
오늘 한 일이라곤
약속에 나가
감히
다른 사람 자리에
앉아있다 온 거였다.
******************************************
한낮이면
몇시간째 열일하던,
내려가도 신통찮을 냉방기가
갑자기
1도의 온도를 높이던..
'고장인가?'
갸우뚱하던
얼마간의 폭염에 시달리다
소나기
몇차례 지나고 나니
익숙한
견딜만한
한 여름의 아침.
안녕? Auggie!
1st 월요일 아침
동갑내기 친척이
이번주부터 휴가라며
댓바람부터 전화에..
아침부터
꿈얘기 들으면
재수 없다는 속설.
울엄마도 나왔단다.
다들
보기좋은 모습이셨단다.
그렇군.
그런저런 수다..
동생 와이프가
느닷없이
항암치료를 받고 있단다.
나는,
청소하다가
소파 밑으로
쑤욱 들어간
청소막대기가 부러졌고
가계부 쓰려고
Hus의
종이통장 정리하러 은행.
에고ㅜ
엉뚱한 곳에
포개져 찍혔다.
수정은
아니
정확히는
알아볼 수 있게
입력된 글자와 숫자를
통장에 다시 입력하려면
본인이 직접와야 한단다.
저녁밥상에서
Hus의 투덜이를 들음.
만남의 주도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이라 힘들다는 친구와
당분간 손절하겠다는 마딸.
속설을 액땜한 하루.
1st 의무방어의 만남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음)
길상사로 내달음.
본전에서
이승을 떠난 이의
49재를 지내는 동안
쉬어가며 절 주위를 돌았다.
연꽃이 몽우리부터 어찌나 곱던지..
도심의 자연,
땡볕을 가리는
초록만발의 그늘 틈으로
드러난 새파란 하늘은
'고즈넉'을 알리고
제가 끝날 즈음
간신히
자리 잡고 앉아
범부의 기도를 드리고 나서는 길,
이승 떠난 이의
흔적을 지우는 종이 잿가루가
아무런 연고 없는
이승의 생면부지인
내게로 달려든다.
아니
저 말고요!
오늘이 지나면
이승의 연이 끝날 터
유족의 여운 듬뿍 안고 가시기를..
승려들과 유족들의
'극락왕생'
염원의 말귀를 들으며 절을 나섰다.
찔끔
내려갔지만
무더위의 맹위를 온몸으로 받는
한낮 나들이.
2nd 의무방어의 만남
더워죽겠는데
제차 만나자는 제의
계속
거절이 무색하여..
(이 또한 나의 귀찮음)
건너 아는 이의 안부를 전하는 일 등등
쓰잘데기 없는 잡담으로
몇시간 보내기.
끈적한 땀수분이
신난다고 뿜뿜거리며 나들이에 동참.
아고 더워라!
3rd 의무방어의 만남
사람 사는 격이 있는건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다름의 갭이 높은 이들이다.
고됐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반성해 본다
나는 어땠는가를..
2nd 월요일 아침
간밤에
또딸이 냉방기를 켜길래
내가
견딜만 하면
안 켜도 되는 거라 웅얼..
But
아침까지
실외기가 물레방아 노릇.
오랜 친구 딸의 결혼소식 단체톡.
보내온 사진들을 보니
사위가 장인이랑 완전 도플갱어다.
신기한 인연의 선택,
우리 부모들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어색한 것이
세월이 참 거시기하다.
수요일
학교에 갔다.
오랜만!
반가운 아이들.
아이들을 보면
그냥
예뻐죽는 본성 발동.
오래전
나를 거쳐간 아이들도..
너무 커버려서
놀라움에 입이 쩌억!
이 또한
반갑고 반갑다고..
모두들
고운 사람들로 성장해주길 바래.
모처럼
오래 서있었다.
허벅지도 당기고
체중을 압박하는 기름진 살을 뚫고
연신 땀이 줄줄..
집에 오는 길에
풍성한 옆꾹대기 머리
손질도 하고..
우리 나이 되면 정수리를 따라
뒤꾹대기 가운데 부분
머리숱은 줄어들고
옆만 풍성하다고
미용사분이 말씀하신다.
나이 들면서
본인들만 느끼는 부조화.
평소의 시간처럼 귀가.
그리고
주(일주일)장춘몽을 시작.
쫄보인 도의심까지 더해
희망고문ㅋ
읊어대던 일의 현실화이나
푸하하..
♬)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을 눌러보는 단계. ㅋ
2nd 금요일
냉방기를 켜지 않은 채
자연풍으로
아침, 저녁을 맞을 수 있는
음력의 오묘함.
이제사
매미 소리가 들린다.
한볕 가신 오후에는
성급한 고추잠자리도
신나게
하늘을 휘저으며 날아다닌다.
지금은
시원한 아침바람 부는 중.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글귀라며 또딸이 알려준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엄마, 뭔가 슬프지 않아?"
"그르네,
(왠지
애뜻한 기억을
저리게 떠올리게 하는)
오르골(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같아."
오랜만에
안방 침대에 누워
다 커버려서
Back Hug도 느끼하다며
손사레하는 녀석과
성인이 되서 지식을 배우는,
진실은
별거 아닐수도 있지만
안 경험해보고는 말할 수 없는
campus의 낭만을 말하자
지적 허세, 허영, 허구란다.
그럴수도!
그러나
지식은
의식을 키우는면으로 보자면
허세의 영역만은 아니다.
살아있는 깊은 멋이 될 수 있는 것이라
필수여야 한다고..
광복절을
훌쩍 넘긴 간 밤,
또딸이 들어오며
"너무 시원해" 한다.
일년 내내
이랬으면 좋겠단다.
빈둥이 엄마가 잠이 안 오니
내가 너를 재운 것처럼
재워달라고 했다.
뻣뻣하게
"그냥 자!" 이지만
내 옆에 누워주며
자신의 잡학 하나 알려준단다.
헤밍웨이의
사람을 단번에 울리는
간결한 여섯 문장,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아,
애미이면
누구나
담박에 눈물바가지인..
새벽 무렵
열려진 창으로
별처럼 쏟아지는 서늘함의 스침에
이불을 여미는 즈음.
건물주 친구와 번개만남.
(집콕만 하는 내가 몹시들
궁금한 모양이다..)
울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선식을 산다고..
예전
그니까
내가 초딩무렵쯤,
여름 초입마다
콩, 보리 등등
가지가지 곡물 볶아
방앗간에 가서 곱게 빻아
여름내
입맛 없을 때
먹는 간식이라며 타주던
그 미숫가루다.
덩달아
나도 사들고 와
새싹보리가루 넣어 냠냠.
엄마의 손맛을 떠올리다.
어느덧
8월의 끄트머리
어김없이
태풍 '오마이스'가 버티기
여름을 과시하더니
가을 장마를 키우고
뉴욕은
허리케인 '헨리' 영향에
133년만의 폭우로
역대급을 기록하고..
기록을 갱신하는
기후변화들이
견디기는 힘들지만
낯설지 않은 즈음이다.
비에 젖은 도로바닥은
소음의 데시벨을 높이고
잿빛 하늘 뒤로
하늘이
하늘거리는 아침.
전원주택마냥
산 속에 파묻힌
은평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은평 한옥마을을 따라
북한산을
병풍처럼 휘감은
진관사에 갔다.
잘 관리된 소나무들과
꽃 사이로 달려드는
호랑나비들이 훨훨.
새로 단장한지
얼마 안 되어보이는 절터..
한국식 정원 같았다.
후덥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초록과 조합을 더한 날.
게서 들은
너무 익숙한
노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하다.
죙일
뉴스(관련)를 틀어놓고..
또 시작이다.
꼴통보수Vs 깡똥진보.
하다 하다
'너는 안 그랬니?
누가 뭐래?
그래도
내가 좀 낫지 않니?'
도긴개긴의
포장된 치사한 언급을
역겹게 들어가며
왜!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건지..
권력이 부여됐거나
권력이 바로 코 앞이라
그 권력을 놓칠 수 없어
잡아내리려는 고래싸움.
새우 같은
누구 등만 터질 노릇 ㅜ
누가,
집권자들이
청정무구의
도덕군자이기를 바란 것일까?
홀랑
벗겨대는 지나침의 눈살 찌푸림.
짜고치는 공세.
누가
(체감으로 평가되는)
정책 내용의
토시 하나하나를 물어뜯는가?
권력에 문이 멀어
진실을 침묵하면서
국민을 운운한다.ㅜ
본질을 벗어난
진영간의 잇권 설전인
쟁점의 쟁점화.
마타도어, 코스프레, 프레임,
내로남불, 전형적 물타기,
부메랑, 역풍, 자충수,
정치공학, 정치공세, 정치쇼 등등인 것은
삼척동자도 알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살면서
(이런 시험에 들지 않기를..)
자자손손에 얼마나 유복하게
물려줄 것이 있는 것인가?
완장 찼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자기 식구 감싸기의 행동대장 노릇은
정말
하지 말아야할 노릇이다.
정치학 전공이 무색하게
정치학 이론은
매일
새롭게 쓰여지는 것이
컴퓨터 공학 버전 수준이다.
어느 언론의 정치토크쇼
진행자의 한마디,
'오늘,
이 지경이 되는데는
언론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통감한다' 는
달랑 한마디 있었지만
돌아서자
그들이 초대한 패널들의
눈 먼 설전은 참사 수준으로 진행중..
아고지고.
비가 억수로 내리는
마지막 화요일.
지도안 하나를 날려먹어서
죙일 완성하느라 뼛골이..ㅜ
지독한 무더위 끝에
가을 장마라는 것이
참으로 요란한 날이다.
이별곡을 뽑자면
김소월의 시
♬) '부모' 다.
B.Y.E. Auggi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