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너에게 묻는다

쨍쨍하늘 2017. 11. 29. 19:29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까지

한번

밀어붙여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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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TV 화면 속에 비친 오래 전의 63-1 버스.

삼십년도 더 오래전,

툭하면 영동시장에서 여의도를 회차해 오는 이 버스를 타고

혼자서

비잉 돌아오던 기억이 뭉클하게 와 닿았다.

이후로도 그 버릇은 12번 좌석버스를 타고

신촌을 한바퀴 돌아 오게 하기도 하고

83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회차하여 남산을 돌아  집 앞에 내리게 했는데

돌아보니

이는 명상하기도 좋았고 우울(?)을 달래기에도 제 격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우울이라는 것이 터무니 없기는 하지만..

여튼

그 우울이라는 것은 나의  오락 같은 취미생활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들이는 주로 사람이 밀리지 않는 퇴근길 직전이나 밤이었다.

한번은

밤에 신촌을 돌아오는데 술 먹은 아찌가 내 옆에 앉았었다.

"학생~"

난 안쪽에 앉아있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한 기색으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 기분을 알아차린 듯,

"부탁인데.. 내가 ●●●에서 내리는데 학생이 나중에 내리면 나좀 깨워줄래요?"

예측 불확실을 '매너리즘'으로 대처함이 가져다 주는 씁쓸함.

나의 취미생활인 우울은 이런 상황 앞에서는 무색함.

지금 생각해도 울다가 웃을 일이다.

그 아찌는 나의 순수함(?)에 신뢰감을 느꼈는지 정말 쿨쿨 주무셨고

나는 나보다 먼저 내리는 그 분을 깨웠다.

그분은 나에게 정중하게 감사하다 인사하고 내리셨었다.

내가 이 나이가 되었으니 그 아찌는 손주까지 둔 훈훈한 할부지가 되셨을 것이다. ㅋ

 

 누구나 그럴테지만 나는 분쟁을 싫어한다.

그럴 소지가 보이면

나는 바로 관련한 상호작용 자체를 접어버린다.

물론

이성을 찾을 때까지 혼자서 화나는 부분에 대해

흥분하고 씩씩거리기는 한다.

단지

내 인격에 치명타를 날리는, 맞장을 두고 이기는 싸움질을 하고 싶지 않을 뿐.

언제부턴가 나는 내 뒷 모습을 더 염두에 두는 사람이 되버려서다.

단념도 체념도 빠른 이유가 예서 오는 것일 거다.

한 방을 쓰던 두 사람의 긴 침묵의 사투(?) 끝에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한 분이 백기를 들었다.

그만두기로 하셨다고.

싸움에는 경중이 있을 뿐이지

어느 한쪽이 백퍼센트 백색일 리 없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은 떠나는 사람을 향해 눈길도 안 준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세..

마치

중재자처럼 둘 사이에서 굽신거리며 인사만 했다.

남은 자는 승리자(?)마냥 웃었고

떠나는 자는 인사 끝의 목소리가 분함이 섞인 듯 가볍게 떨렸다.  

승리,

상처 뿐인 하찮은 영광.

그들은 내게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 치졸함을 예를 들어 말한다.ㅠ

그러나

둘의 끝은 그들의 성격과 살아온 환경을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탓에 서로에게 주어진 Position에 차별의 격을 쓰고

서로에게 행동했기 때문이지만

서로는 자기 입장만 생각하느라 자잘못을 들여다 보지 못해 끝을 만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또딸 친구들의 성장기가 새삼 생각난다.

하루는 또딸의 어울려 노는 한 친구가 조퇴를 하고 집에 갔단다.

오후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에게 물으셨단다.

●●이가 꽁지뼈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 물리치료를 받는데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긴 건지 끝끝내 말을 하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혹시 아는 친구 있냐고..

짝꿍이자 이들의 친한 친구중 하나인 ♠♠이 손을 들고..

아침, 수업 전 ●●이가 앉으려 할때 자기가 장난으로 의자를 잡아 빼서

그만 꽈당했는데 그게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단다.

황당한 침묵 뒤의 엷은 웃음.

또딸을 비롯한 이 그룹들의 친구들은 휴대폰을 돌려 받은 뒤,

당장 ●●에게 문안 문자를 날렸단다.

다음 날부터 이 어울려 노는 친구들은 더 가까워졌다고..

이런 그들에게 껄끄럽지 않은 일이 있었단다.

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하는,

그래서 그럭저럭 잘 어울려 놀았던 ◐◐이라는 반 아이는

자신이 영국을 다녀왔다며 해리포터 젤리와 초콜릿을 가져와

이 그룹들에게 나눠줬는데

그중 단 한 명에게만은 나눠주지 않았단다.

◐◐은 이 한 명을 빼고 자신이 짝수로 끼어서

이 그룹들의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을 원색적으로 표현했던 것 같단다.

그러자 이 한명 앞에서 선물을 받은 친구들이

오히려 당황하여 받지 못한 이 한명에게 나눠 먹자고 권하며

우리 집에 이 초콜릿 박스로 있는데 내일 가져와서 주겠다는 등등..

◐◐의 선심, 즉 자신의 배려 없는(?) 이기심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므로서

◐◐은 끝끝내 이 그룹의 친구 사이에 낄 수 없게 되버렸단다. 

(◐◐이 와서 말을 걸면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주기는 하지만

이들 친구중 누구도 ◐◐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단다.)

자기가  사귀고 싶어하은 친구들은 어째서 좋았는지 알았을 것이다.

 ◐◐은 찐하게 성장통 한번 겪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른이 되기 전이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철학자 같은 소리를 하는 또딸이 말한다.

"엄마, 각박함은 탐욕만큼 슬픈 일인 것 같아."

◐◐은 학년 초부터 이 한 명을 괴롭혔단다.(?)

이 한 명이 노는 한 친구사이에 끼어들어 단짝 노릇을 하자

이 한 명이 그만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구들 조합에 또 끼어들어

이 한명을 밀어내려고 한 모양이다.

듣는 내가 고약스럽다고 흥분했다.

또딸이 말한다.

그런데 그 한 명은 여기저기 친구가 많아서 그런지

◐◐에게 노여워 하는 대신 그냥 픽 웃고 말아버린단다.

그 한 명은 다음날,

유럽 여행을 다녀 온 옆반 절친이 자기가 주문한(?)

모짜르트 초콜릿을 선물로 줬다며 친구들 앞에 내놓고 함께 먹었단다.

◐◐에게도 주더냐고 치졸하게 물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못난 어른이 맞다.ㅠ

또딸은, 그냥 친구들 사이에 펼쳐놓은 거지 누구를 지목해서 준 게 아니니

◐◐에게 권한 것도 맞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들끼리 

◐◐에 대해 이런 일체의 언급은 안하지만

◐◐이가 예전처럼 이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는 걸 보면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딸에게 물었다.

"넌 어떤 stance냐?"

"나야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stance다아 ㅋ"

내 새끼가 틀림 없다.ㅋ

◐◐은

자기가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친구들에게 뇌물로 주면서

조합에 관계 부각을 알리려 한 것 같다.

어른들도 장기 하나를 빼내는 일이라며

심호흡 한 번 하고 저지를 일인데.

하여

하늘이 자신을 가려준 것 같은 그런  어두운 밤에도

자신의 한계에 부끄럽고 치밀어 올라

알코올에 기대 정신줄을 놓고 싶은 일일텐데..

◐◐은 자기가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나눠갖고 싶었는데

왜 친구들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냐며 속상해 하지는 않았을까?

 또딸이 말한다.

"엄마, 그거 우리 학교 앞, 편의점에서도 팔아.."

◐◐은 편의점과 달리 자기의 소중한 마음 전한 거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이 저렴해서 자신이 놀고 싶은 친구들의

자존감을 해친다는 걸 몰라 그랬을 것이라고 하자

또딸은,

◐◐은 자체가 못된 아이라기보다는 약한 아이라고 말했다. 

학년 초부터 친구를 못 사귀게 될까 긍긍해하는 아이 같았단다.

그래서

자기가 보기에 친구하기 좋아보이는 조합에

자신을 뺀 자기 모습만을 얹혀놓고 싶은 불안감이 빚어낸 일인 것 같다고 했다.

Poor.. 그래, 가여운 일이다. 

자신을 너무 잘 알아서 그 방어가 빚어낸 일이라니..

 

 지나친 이기(利己)는 절대 적(敵)이라서

이기적(利己敵)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개선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알던 모르던 그 방법은 악화일로로 치닿기 쉬운 것 같다.

뭣보다

이기적(利己敵)을 덜어내는 것은 다름을 이해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다름의 다양성'에서

상호작용하려면 이해와 절제의 예의 필요한 것 같아서다.

우리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얻는 자신감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그 기쁨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으로 치면 말이다. 

 

 어느 주말,

난 Hus의 세번째 애인을, 것도 최신형으로 장만해 주었다.

이러고 보면 나도 한참 돌았다.

제 정신이 아닌 게다.ㅠ

Hus는 좋아죽는다.

나보고도 자기의 애인을 같이 좋아하잔다.

"우리 삼각관계 되자는 거야?!"

TV Holic이 보기 싫어 몸서리 쳐놓고는..

첫번째 애인 때는,

"이 TV는 내가 사온 것이니 내 소유다.

그러니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못 본다!"

고 하자 Hus는 말했다.

"TV는 자기 것일지 모르나 전기세는 내가 낸다.

TV가 있은 들 전기가 없이 볼 수 없는 거 아니냐?"

하며

우리의 소유물에 대해 공유임을 강조했다.

근데

이젠 나도 쬐금씩 본다.

어떨땐 Hus처럼 TV 켜놓고 코골며 자기도 한다.

TV 때문에 거실을 차지한 진정한 바깥 양반거실 점령기도

점점 내 목소리에 주눅 들어가고..

어쩜

내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 샀는 지도 모르지만 ㅋ

여튼 생일 선물 명목으로 사줬다아

(Hus 수입으로, 생색은 내가 내면서 ㅋ)

 

 작년, 

결혼 20주년이라고

Hus는 나에게 내 이름으로 된 조그만 땅을 사줬다.

명의만 내 땅이라는.ㅠ 

실속 면에서는 Hus다.

그 땅에다 농사를 짓고

여름내 상추,고추와 옥수수를 가져다 먹었다.

추석 연휴에는 온가족이 함께 가서

고추, 고구마를 듬뿍 추수해와 주위 분들과 나눠 먹었고

빨간 고추는 베란다에 널어놓고 말렸다가 김장용 고추가루로 비축했다.

올해

농사의 끝으로 Hus는

텃밭에서 배추와 무우를 잔뜩 뽑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일요일,

처음으로 둘이 앉아 김장을 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엄마 주도하에 언니네(형부까지 동원해서)와 함께 한 김장.

이젠

Hus가 추수해온 농산물로

(내 대신 장도 봐오며) 단둘이 앉아 김장을 했다.

우리도 자식들에게 나눠줄 준비 preview일까.

엄마가 우리에게 그렇게 나눠주려고 애쓴 것처럼.

나이 듦의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Hus의 일 줄 모르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그 연령대의 남성 우월주의가

아름아름 꺾여가는 걸 느끼다 보니 측은함마저 든다.

한 남자와 인생의 반평생을 함께하면서 갖는 희노애구애오욕락.

 

 이번 

11월 월기(月記)의 주제는 이다.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어느 때를 느껴버린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