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빈다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꽃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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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가을이 묻어난다.
양쪽 학교를 오가는 일이
힘들어
하나를 정리한
9월의 첫날,
후련함을 자축하러
교육을 다녀온
(날이라 더욱 집 밥이 몹시도 그리웠을
그러나 나를 먼저 생각해 준)
hus, 아이들과 또딸이 좋아하는
회전 초밥을 먹으러 갔다.
포만감 가라앉힌다고 산책도 했다.
이런 여유로운 저녁이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늘 시간과 일에 쫓겨 살아서
외식은 잦았지만
심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자도 자도 졸리고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긴장할 일들 투성이라..
그 와중에
장미칼에 살갗을 베었다.
내가
무슨 릴케도 아니고.ㅠ
덕분에
설거지도 못한다.
hus는
이런 내게
측은지심을 갖는 것 같다.
물 닿는 일 하지 말란다.
그런데
아쿠아 밴드 하고 수영장은 갔다.ㅋ
지난 이 십년의
백수 시절 동안,
사원증 목에 걸고
점심 거리를
삼삼오오 활보하는
직장인들의 사회적 소속감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올해?
소원 성취했다.
느낌은?
막상 해보면 별 거 아닌 거다.
분주한 퇴근길,
그 속의
익명적 존재인
나일 뿐인 거다.
그래도
해보고 싶고
꿈꾸는 일은 해봐야 한다.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어
상황이
이성적, 발전적 진전이라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별 거 아닌 것이
활력소가 되고
즐거움도 주니 말이다.
요즘은
집에 돌아오는 길부터
시장기가 느껴져
집에 들어서자 마자
허겁지겁
혼자 밥을 먹어버린다.
그리곤
쇼파에 쓰러져 자는 일상이다.
(덕분에 살은 야금야금 불고 있고
건강 검진을 해보니
키는 2년마다 1cm 씩 줄고 있었다.ㅠ)
그러면
나중에 들어온 마딸이
쌓아놓은 설거지를 한다.
한 두번은
고맙다고 했지만
웬지 미안해
자면서 내버려두라고 한다.
원체
selfish인지라(?)
들은 척도 안한다.
많이 고맙고 대견하다.
자식 잘 키운 것 같다.ㅋ
그리곤
아침 5시 반이면 눈을 뜬다.
고작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했는데
이젠 어둑하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가려나 보다.
문득 나의 나이 듦이
'세월'이라는 것을
흘깃거리게 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지인이 보내주신 몸에
너무 좋다는 아로니아.
풍족해진 요즘
세상을 살면서
나의 호의가
진정 내 마음 만큼
상대를 만족시키는가를 고
민하게 하면서
뒹글거리고 싶은
일요일에 떠 안는 짐 같았다.
BUT
이런 잠
시의 이기심 버리고
감사하다는 문자와
전화를 하고
손에 보랏빛 물기 잔뜩 묻혀가며
가지 떼고
씻어 체에 받치면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궁리하다
일부는 가까운 이들과 나누고
일부는 냉동실에 보관하고
나머지 일부는
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또딸과
내신 공부하려고
비워놓은 시간에 ㅠ
밤이 되어서는
공부하는 또딸 옆에서
헤드 뱅잉.ㅠ
또딸이 "엄마! 일곱 시야!"
소리에 놀라
번쩍 눈을 뜨는 나를 보고
웃겨 죽는다.
"아침인 줄 알았지? ㅋ
아구우, 가엾어라 ㅋㅋ"
10월 축제 때
오케스트라 멤버로서
연주하는 또딸.
이번엔
음악 선생님 대신
외부에서 지휘자 선생님이 오셨단다.
(또딸의 첼로 소리가 제일 좋다고 하셨나 보다.)
그리고
자신이 7분 짜리 연주곡의
일부를 솔로로 연주한단다.
중3이니
자신에게는
졸업 연주회가 될 것이고
좋은 기억의 추억이 될 것이라
고무적이기도 한데
초등학생 때도
솔로로 뽑힐 때
덤덤하더니만
지금도 그렇다.
엄마인 내가
당연
솔로로는
너 밖에 없다고 호들갑이다.
오케 오디션 때,
모두들
우리 또딸한테
감탄했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BUT
다수가
비싼 수제를 들고 오는 일에
주눅이 들어있던 터여서
또딸은 시쿤둥했다.
"야, 눈 가리고
올드랑 일반 악기랑 연주 시켰더니
별 차이 없다는 게 검증됐다.
그저 올드가 비싸다는 것 뿐!"
(여중을 다니고 천상 여자이지만ㅋ
진정 아들이고픈) 아들!!
내가 올드 티 나게
악기에다
빤질빤질하니 니스 칠 해줄까?! "
또딸은
뒤집어지면서 웃는다.
"야, 고가의 수제면 뭐해!
너보다도 소리가 안 나는데?
니 악기가 올드는 아니지만
니 현은 최고품이고
활도 꽤 비싼 거야.."
그러나
메이저급을 느껴버리면
그 이하의 어떤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불변의 진실이라 ㅠ
유럽 여행 가면
벼룩 시장을
샅샅히
뒤져볼까 궁리중이다.
부셔진 수제품
하나 건져와서 손질해서 쓰게.ㅋ
진정한 올드는
그런 역사를 갖고
만나고 싶은 의미도 있고..
반평생의 삶을
산 지금의 선생질?!
애초부터
출발선이 달라져 버린
리그 속의 아이들.
그저 안타까움이다.
BUT
(유리창을 깨야 하는
수고를 떠안기는 해야 하지만)
싱싱한 떡잎들을 보면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보태게 한다.
보편적 삶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은
흔한 현실은 아니지만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지게 해서다.
과정의 기쁨이랄까?
그래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요즘
특히
화.수.목은 정말이지 그로기다.
내 삶의 카타르시스인
지적 욕구를 느낄 여유도 없고
일을 시작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데..
느닷없이
밝은 색의 옷을
사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허(虛)해져서
그런 것 같다.ㅠ
그나마
지난 달은,
'알쓸신잡'으로 연명(?)했고
이번 달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독일 편' 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더 여행을 떠나고 싶어
병이 날 지경이지만
다음 달?
추석 연휴가 길어
여행 같은 휴식을 할 수 있으니
참아보고 버텨볼 일이다.
근교의
전원 주택에 사는 친구가
자기네 닭이 알을 낳았다며
사진을 톡으로
자랑스럽게 보내왔다.
인간(?)답게 물었다.
"먹을거야? 키울거야?"
인간이란..
그 자체로 만족하는 대신
다음의 건설적(?) 계획이 필요하니까.
우리는
원죄의 사함을 간절히 바라지만
그건
살아있는 한 불가해서
단지
'정도껏.' 을
원칙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원칙부터 모순이지만
순백을 가리자면
인간을 동물로 취급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고개를 숙이게 하는 인간이
일궈논 얼마간의 정제된 삶이
무위해지고
너무 황폐해진다.
인간으로 살면서
황폐함을 부추기는
"그러는 너는?!' 이라는
반박이 금기시 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토요일,
9월 끄트머리의 이른 아침.
감동스런 파란 하늘과 공기는
영락 없는 서늘한 가을이고
빵 굽는 냄새는
서늘한 공기에 싸여
뭉클한 온기로 파고 든다.
성급한 낙엽들도 바람에
휘청대며 가을 흉내를 낸다.
계절감?! ㅋ
그리고
나는
10월 공개 수업 지도안을
만들고 준비하고 있다.
배꼽 빠질뻔한 언어유희 하나 배웠다.
'언어 마술사 VS 언어 맙소사'
언어 마술사는
즉흥적 순발력으로 반응하지만
언어 맙소사는
준비하고 덤벼도 문제를 야기한다는..
올 9월의 색깔..
여행지를 비추는 밤의
백열등 불빛.
그 밤의 유혹.
석양의 진홍색과
어우러지는 남색의 파장.
잘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으로 삼을 수 있는 삶의 여유.
영화 'Maudie' 에서 배운
Naive Art 라는 신선함.
죽을 때까지도
내 속의 불 같은
나를 모르고 살 수 있겠다는..
그래서
의욕적으로
나를 들여다 봐야한다는..
안녕.
준비 없이 맞은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