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소풍
명랑한 소풍
이효림
잠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머리카락 끝에 누워 있는 잠
구두는 깜빡 졸고
열려있는 귀를 민다
별이 내릴 동안
하늘은
계단 아래 허리를 구부리고
죽어서
어여쁜 과거,
지문 없이
잘 썩은 꽃향기 들판에
지천으로 핀 엄마,
엄마는 젊고
동생은 언제나 작고
나비 날고
나는 어여쁘고
앞집에는
네가 살고 있다.
잠을 열면
레일을 벗어난 철학이
더 달콤하여
장미는 흑백이며 서민적이며
새들은 목구멍에서
내일 내일 뿌리를 내린다.
비들은
계속 알을 까고
쥐들이
햇살을 갉아대는
첫번 째 주말은
유토피아를 사러간다.
개가 큰소리로 짖으며
산들은
몇 개 더 골목을 만들고
양지를 골라 코미디를 싣는다.
딸랑거리며
깡통찬 고래가
밀림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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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과 고별을..
김치가 큰통으로 하나가 남아 망설이고 망설이다
갑자기
칼바람 쌩하니 부니 정신이 번쩍!!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김장을 했다.
3년째 모진 각오로 말이다.
(엄마가 정신을 놓은 뒤부터니)
마음의 준비와 각오는 공부로 치자면
개념 완파인 것 같다.
생각보다 가볍게 해치웠다.
저녁에는
월계수잎 동동 띄워 수육도 만들었다.
두 녀석이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여지껏 안해줬냔다.
어이없다.
김장 때마다 김장속과 배춧잎파리랑
맛나게 먹은 기억은 어디로 날려먹고.
생사람 잡을 놈들이다.
언제나
김치 담그는 날은 늘 뻗어버리는지라
남편부터 모두 괜찮냐고 물어줬다.
김치 냉장고에 꽉차게 채워놓고 나니
어찌나 든든한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친김에 미뤄두었던 일,
책 사기. 가족들 메리야스 , 수명을 다해버린 다리미,
아이들 방석 바꾸기 등도 해치웠다.
개운할 즈음,
세탁실에서 누수가..
(윗집의 문제였지만.)
작년에는 세를 준 집에 누수가 생겨
마루바닥 다 뜯어내고
도배까지 대보수 공사를 해 준 악몽 같은 기억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움켜쥐고 관리실에 전화를 했고
하루 이상의 불편함 끝에 문제는 가볍게 해결됐다.
환청일까?
자꾸 어디서 똑똑 소리가 나는 것도 같고
미처 누수가 제대로 안 잡힌 건 아닐까 철렁하기도 했다.
여튼
부랴부랴 이사하느라 세탁실을 맘껏(?) 치우지 못하고
짐을 푼게 찜찜했는데 다 걷어치운 참에
후련하게 닦고 정리도 다 해버렸다.
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건데
쓸데 없는 물건들로 왜 저리짐을 만들까 하는 일이다.
몇 번의 이사를 할 때마다 이삿짐 센터 분들이
칭찬인지 흉인지 모를 소리를 했었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이 제일 겁나고 싫어하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 집 이사란다.
하도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얼핏 보면 짐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꺼내도 꺼내도 짐이 한도 없이 나와서란다.
세탁실을 한 번 훑고 나니 그랬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찜찜했던 욕실 등 주변이 또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 만한 등들 주변을 닦아내고 천장을..
다음날부터 며칠을 허리에 깁스한 것처럼
반듯하게 서서 일어났다 앉았다 했다.
2014년과도 가뿐하게 Adios할 수 있을 것 같다.
또딸의 미술 과제인 '미술관 관람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냉바람 혹하게 부는 어느 토요일 오후,
예술의 전당으로 나섰다.
또딸만 들여보내고
나는 내키지 않아서 로비에서 기다렸다.
또딸이 2학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술관, 박물관,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일을 열심히 했었다.
다녀와서는 후기도 작성하여
매년 책도 꾸준히 만들었다.
도슨트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은
나도 살찌게 해서 좋았다.
또딸도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또딸은
도슨트와 함께 하는프로그램을 거부했다.
대신 오디오 해설기를 빌리거나
자유롭게 혼자 감상하고 싶다고 했다.
'팀 버튼전'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어렵게 도슨트 투어 시간에 맞춰 갔는데
또딸은 혼자 감상하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혼자 관람 후기를 써놓았는데
내가 느끼지 못한 그럴싸한 면모를 보면서 알았다.
내가 함께 따라나서면 자꾸 더 알려주고 챙기고 싶은
욕심을 내는 것이 전시 관람의 감상을해칠 수 있다는 것을...
미술 전시를 보러 들어가서 생각보다 금세 나왔지만
보고서는 내공이 엿보였다.
로비 의자에 앉아
문득 챙겨 입은 옷가지를 보니
작년 이맘때의 여행길이 강하게 느껴져 왔다.
세월 참 빠르다.
작년을 지나 올해도 지나가고 새해를 맞을 참이니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인생의 오아시스라고 할까?
일상을 잠시 떠나 온전히
나를 나로만 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잠시만 떠날 수 있어서 더 짜릿할런지 모르겠다.
함께 여행을 떠났었던 친구에게
그런 저런 생각들을 담아 톡을 했다.
2월에 어디든 다녀오잔다.
자기야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 독립시켜 내보내고
둘째는 유학 보내놨으니 걸릴 것이 없지만
나는..
현실적으로 안되는 거
저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다.
자식에게서 조금씩 해방(?)의 시간을 얻으면서
자꾸 나로 돌아가려하는 것 같다.
역마살이 새싹처럼 돋기 시작하는 일,
사냥꾼에게서 선녀복을 돌려 받은 것 같은..
마침 시드니 사는 친구가 이민을 슬그머니 권한다.
우리 또딸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채
서양인의 정체성도 수용할 수 있는 적기란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라면 좋겠다는,
첼리스트가 꿈인 녀석에게는 떠나볼만한 일이지만.
예전에
내가 싱글일 때도 이 친구 부부는
내가 거기 남아 살기를 바랬었다.
근데 그때는 너무 외로워서 싫었다.
지금은 가족이 있으니 나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에게 물었다.
장난처럼 좋다고 끄덕인다.
정년을 코 앞에 둔,
내년이면 육십이 되는
남편에게는 무모한 시도일런지도 모른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별명이 마샬(역마살의 미화)부인인 친구가
상기된 목소리로 봄 되면 같이 알아보잔다.ㅋ
마딸의 기말 시험 감독을 다녀왔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시험인 음악 시험,
방송으로 음악을 듣고 풀기.
그리그의 '솔베이지 송'이 나왔다.
창덕궁에서 맞는 파랗고 쨍한 가을 하늘에
딱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해왔는데
혹한이 시작되는 겨울,
그것도 시험 보는 교실에서 듣는 기분이란..
감회가 변화무쌍하군.
몇 곡 뛰어 스메타나의 '몰다우'가 나왔다.
'이런..'
혼자서 조용히 미소를 연발 퍼뜨렸다.
집에 가서
Pilsner Urquell나 Gambrinus는
아니더라도 맥주는 마셔줘야겠다고 ㅋ
감독 명찰걸이를 대기실에 두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분명 두턱이었던 내 얼굴, 턱이 하나다.
홀쭉해 보인다.
'저런'
시험이라 긴장한 탓인가?
아침도 굶고 와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춥고 배고픈 느낌이..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고 일어서며
비친 또 다른 거울
원래의 두턱과 퉁퉁한 내 모습..
마딸네 학교 거울이 요술 거울이었던 거다.
살을 좀 빼보까?
홀쭉한 모습이 좋아보이던데.
소소하게 익숙한 일상의 날들을 보내며
이제
2015년을 향해
명랑한 소풍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