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하늘 2012. 9. 19. 23:05

후조

                                김남조

    

당신을 나의 누구라고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마주 불러볼 정다운 이름도 없이

잠시 만난 우리

오랜 이별 앞에 섰다.

 

갓 추수를 해들인

허허로운 밭이랑에

노을을 등진 긴 그림자 모양

외로이 당신을 생각해온

이 한 철.

 

삶의 백가지 간난을 견딘다 해도

못내 이것만은 두려워했음이라

눈 먼 듯 보고 지운 마음

신의 보태심 없는 그리움의 벌이여

이 타는 갈망.

 

당신은 나의 누구라고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우리 

다같이 늙어진 어느 훗날에

그 전 날 잠시 창문에서 울던

어여쁘디 어여쁜

후조라고나 할까   

 

옛날 그 옛날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더니라

애뜯는 한마음이 있었더니라

이렇게 죄 없는 

얘기거리라도 될까?

 

우리들 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