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치애인

쨍쨍하늘 2012. 7. 27. 00:51

 

           

      백치 애인

                       

                                  신 달자

                                  

나에겐 백치애인이 있다.

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를

그리워 하는지를 그는 모른다.

별 볼일 없이 우연히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봐서

길거리의 한모퉁이를

지켜 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 찻집에서 찻집 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 눈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길거리에서 백화점에서

또는 버스 속에서 시장에서

행여 어떤 곳에도

네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

내게 한마디 말도 해오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이다.

바보 애인아.

너는 그 허허로운 결과를 알고

먼저 네 마음을 돌처럼 굳혔는가.

그 돌같은 침묵 속으로 네 감정을 가두어 두면서

스스로 너는 백치가 되어서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가.

 

바보 애인아.

세상은 날로 적막하여 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큰 과업처럼 야단스럽고 또한 그처럼도 못하는 자는

 

절로 바보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래 바보가 되자.

바보인 너를 내가 사랑하고

백치인 네 영혼에 나를 묻으리라.

바보 애인아. 거듭 부르는 나의 백치 애인아.

잠에 빠지고 그 마지막 순간에 너를 부르며 잠에서 깬

그 첫 여명의 밝음을 비벼잡고

너의 환상을 좇는 것을 너는 모른다.

너는 너무 모른다.

정말이지 너는 바보, 백치인가.

그래 백치이다.

우리는 바보가 되자.

이 세상에 아주 제일가는

바보가 되어서 모르는 척 하며 살자.

기억 속의 사람은 되지 말며

잊혀진 사람도 되지 말며

이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자.

우리가 언제 악수를 나누었으며

우리가 언제 마주앉아 차를 마셨던가.

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고 지나가는 아무 상관없는

행인처럼 그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는 거다.

바보 애인아.

아무 상관없는 그런 관계에선 

우리에게 결코 이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의 애인이다.

백치 애인이다.

아, 영원한 나의 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