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행은 혼자 떠나라

쨍쨍하늘 2019. 12. 31. 06:23

 

 

 

  여행은 혼자 떠나라

 

                                              박노해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 갈 때

달려가도 멈춰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깨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 잡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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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올해의 대미가 될 열 두달 중의 꽁찌.

12월.

받아올림의 다음 해 앞에 섰다.

 

 12월 첫날.

아침부터 가는 비가 죙일 내리고

비가 멎고나면 겨울 추위가

눈과 함께 나의 도시로 온단다.

Hus와 단둘이 드라이브.

군말 없이 따라나서 준다.

'빗속의 연인' 이기는 왠지

서로 무색하지만..ㅋ

 

 쨍한 하늘.

언니가 또 응급실행.

꼬챙이가 되어버린

그럼에도 못 먹겠다는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이

살려보겠다고 왕왕.

벌써 일년..

병자와 가족 모두의 고단함.

더불어

생사에는 답이 없으니 더욱 착잡.

 

 (그렇게) 월요일은 응급실 옆

대기실에서 꾸벅대다 귀가.

병자 옆에서도 나는 살겠다고,

감기 안 걸리려고 몸 사림.

수요일,

7년 동안 와상으로 요양 병원을

지키시던 친구 아버지 소천.

문상하고 돌아오니 밤중.

게다가

마딸이 팀플 대본의 도움을 물어와

새벽이 되어서야

아파오기 시작하는 눈꺼플의 휴식.

목요일,

Hus가 만든 김치찌개 끄적대다 기절.

        비몽 중에 (기말 시작한)

스터디 카페에서 돌아오는

또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꽉 찬 하루를 보내면

주말의 여유를 기대할 수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요일의 안식.

(금요일부터는

주말 끝의 count down이라..ㅜ)

분주함으로 맞은 12월의 첫주.

채점의 홍수.

그리고 토요일..

40여 년만에 만나(야 하는)는 멘토와의 모임.

변함 없으신 분.

남편 분은 세월의 흔적을 듬뿍 담으셨지만

우리의 멘토는 정말 여전했다.

주장과 편견.

하도 웃어서 볼이 당기도록 아팠다.

타협이 불과한 기름진 부조리와 모순투성이.

그럼에도 그 확신의 꽃.

이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기까지 하다.

일상의 지루함에

가끔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다가

이런 만남을 무르고 나면

일상의 익숙함이 축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맞은 둘째 주 월요일,

나는 변함 없이 아이들을 달궈대며 학습.

나의 일상.

그런데 뭐 별로 축복 같진 않다.ㅜ

 

 저녁을 먹고나면

바로 숙면의 밤이 일상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뚝딱뚝딱 일 시작.

모두 내보고 나면 책 대신 영화 보기.

그리고

독후감 대신 영화 감상문으로..

'Everything Will Be Fine'

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레이첼 맥 아담스가 나온다길래 선택.

그런데 레이첼은 우정 출연 같았고

 J. Franco의 내적 갈등의 연기.

첫 장면, 영화관이 그려졌다.

꽝광 얼어붙은 호수를 구멍내

낚시를 즐기는 밖과 그런 이들이

쉬어가는 허름한 간이 오두막의 안쪽.

어두운 공간을 선명하게 알리는,

영사실에서 쏘아대는 빛줄기에

존재감 뿜어내는 먼지들이

오두막의 창과 벽 틈새로 파고드는

햇살에는 눈발처럼 날리고..

연통 난로 위의 포트와 머그잔.

무언가 섬세함에 끌려 영화에 몰입.

집을 나서 낯선 환경을 찾았지만

토마스의 지지부진한 글 작업.

차를 몰고 눈길을 주행.

올 2월, 버몬트의 눈덩이가 쌓인

어느 거리를 떠올리게 했고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왔을 법한 눈 속 외딴 집 등장.

한적하다 못해 외로움을 강조하는

천지가 눈이 아리게 시린 눈밭.

문득 차에 받히는 무엇.

차에서 내려

안도하는 토마스와 굳은 표정의 아이.

아이의 집 현관 입구에 그려진 사람.

엄마의 오열과 눈밭으로 내달림.

등장이 필요한 한 아이가 없어지고

토마스의 자책과 죄책감은 자살 시도.

치사량 아닌 허술함으로

살아남은 자의 고뇌.

예기치 않게 사람을 잃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참한 트라우마.

외로움에 슬픔이 더한 

아이 엄마 요청에 달려가 위로.

서로가 잃은(놓아주어야만 하는) 사람에 대한 회한.

 

 사라.

일상의 교과서 같은 말,

위로되지 않는 위로로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고

뭐 유행가로 치자면

♬) '그 남자 그 여자' 의 한 소절쯤이다.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난다는 그 남자..'

"네 엄마는 일탈을 상상할 수 없는 따분한 여자였단다.

네가 없었다면 벌써 헤어졌을 거다.."

토마스는 이런 아버지의 푸념에 반발하지만

 

엄마를 닮은,

그러나 엄마가 아닌 사람이어서 이별 선택.

오랜 세월이 지나

        토마스의 덤덤한 구색을 갖춘 가족 꾸림.

우연한 사라와의 만남.

여전히 그 자리, 그 곳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사라의 안부.

배신이라 확신하는 사라

두 번의 손찌검.

'뭐 그렇게 해서라도 너를 떠난

나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만 있다면.

지금 네 앞에서 나의 힘들었던

너와의 인연을 운운할 치사함 따위는 접어두고..'

하는 남자의 후련한(?) 심정.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의 아픔을 흔드는 사건.

분명 사고였으나

토마스만 잘 살고 있다면 불공평.

참고 싶지 않은 불만을

터뜨릴 기세로 성장한 아이의 확인.

깊은 밤, 토마스와 알코올을 삼키며

다음 날 아침을 맞고

청년이 된 아이는 이해 받고 싶던 

자신의 분탕질을 인정하고

미소를 남기며 토마스를 떠난다.

자신의 어떠한 상황이나 변명 대신

상대(가 집착하는)에 대한 자신의 잘못 인정.

이해는 받을 수 있으니

사는 일을 인정 받을 수는 있는 일이기도..

마침내 받아낸 면죄부의 진정성으로 THE END

 

 둘째 일요일,

언니네 갔다.

언제까지 가려나.

여기서부터 다시 회복하려나.

다행히 입맛이 돌아와 소갈비 타령.

모두 그나마 먹어주는 것에 축하 축하.

애가 따로 없다.

효자동 유명한 빵집 있다고

그 빵이 먹고 싶다고..

식성에 유난스러움까지 보탠다.

 

 겨울비.

동지가 바로인 즈음.

비가 내린다.

아침 8시를 넘겼지만 어두컴컴하다.

요즘 날씨가 겨울 같지 않아 그럴까

분명 겨울비인데

2월을 막 보내고 봄이라 읊어대는

3월 시작 어느 때의 비 같다.

오늘 등굣길에는 짐도 많은데..ㅜ

다행히 내가 나서기 시작한 때는

비가 멎었다.

늦잠꾸러기들에게는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짧았던 아침비

 

 동짓 팥죽.

이른 아침, 나의 하루 시작.

전기 밥솥에 팥 삶아

도깨비 방망이로 익힌 팥 갈고

씻어 논 찹쌀 넣어

천천히 푹 익혀 팥죽 만들기.

나무 주걱으로 저어가며

여행 프로그램 보기.

뉴욕이 나온다.

축복 듬뿍 받은 것 같은

그저 티 없이 파랗기만 한

하늘 아래의 맨하탄의 거리들.

다시 가고 싶다는 꿈틀거림..

 

 크리스마스.

가족끼리 뭘 할까?

딱히 아쉬운 것들이 없나보다.

획기적인 무엇을 하고 싶다는데..

다들 갸우뚱이다.

        그래서 황량한 겨울 거리 드라이브.

 

 가족끼리 망년회.

화양리의 딤섬 집에서.

고약한(?) 학생 녀석이

모르는 문제를 스캔해서 보내더니

안 읽는 나를 향해 전화까지.

외식중이다.

그림이 필요한 설명인데

종이도 펜도 없다.

집에 들어가서 알려주겠노라고..

일명 공주마마인 아이의 막무가내.ㅜ

빼도 박도 못해

문제풀이 해주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마딸이 말한다.

망년회의 뜻 변천.

(망해먹은 일년을 알리는 모임 )

뭐 딱히 망해 먹은 일은 없으나

기대감이 좌초된 것을 들자면..ㅜ

 

 바이 바이, 2019.

나는 지금

2019년의 마지막 아침을 맞고 있다.

올해 우리 사회의 작태를 보자면

내로남불이 딱이다.

내년에는 달라질까?

모두들 제 욕심만 채우려고

자기만 들여다보다

자기도 남도 망하게 할 기세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마감하는 2019의 이별곡은 경쾌하게

M. Transfer의 ♬)'Java J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