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쨍쨍하늘 2019. 10. 31. 09:04

 

 

 

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을

새로 사귀어야 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자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

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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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독에 끌렸던 시.

차곡차곡 몇 번을 읽어가자니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

입천장 허물이 너덜댈만큼

뚝배기에 열기를 꼬옥 잡아

불쑥 내밀어진

뜨거운 잡탕 국밥 같아서

막상 마주하는 순간의 부담스러움.

그러나

한참의 시간을 무르고 나면

희노애락을 담아 애환, 회한 등등

사는 일의 엑기스가 되는 일.

살아있음의 기초단계.

 

 조용하게 비가 내리는

개천절 아침,

아침의 평화에 취하였으나.

낮으로 달려갈 즈음은 햇님 쨍쨍.

명동 성당 들렸다

동대문 시장에 타올 사러가려..

목불인견.

한남동부터 차가 꽉 막히더니

남산1호 터널에서는 느린 걸음만도

못하게 차가 움직인다.

간신히 명동 입구에 도착.

장 안의 관광버스가

모두

이 길을 통과했다 할 정도로

많은 인파를 실은 관광버스들이

1차선 도로마다 정차.

진영 논리, 이념 싸움으로

사사건건 못마땅하던 차에

기어이 꼬투리 잡아

몇 년전의

촛불집회 몰이를

하겠다는 사투처럼 여겨졌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정치 진영의 투쟁.

한숨을 내쉬게 하는 광장의 목소리.

관광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광장으로 달려가기 전부터

먼 길을 달려오는 일이 고됐을까,

옆의 동료인지 친구인지를

관광버스가 줄줄이 주차한 사이로 데려가

검은 비닐 봉지의 막걸리를 권한다.

"에이, 시작도 전에?"

올봄,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는,

그들의

집회가 끝나고 난 현장 뒷모습.

삼삼오오 바닥에 앉아 목을 축이던

막걸리통과 같다.

이들의 처음과 끝의 일관성.

명동 성당도 분주했고

명동 거리는

관광객과 섞여 북적했으며

을지로 통을 지나는 차는

언제 올 지 막연한 채로

광장에서 울리는

기름진 스피커의 목소리 또한

올봄의

주말 거리와 흡사함에 씁쓸.

차 타기를 포기하고 횡단보도를 지나

종로쪽으로 걸었다.

바로 맞는 햇살은 어찌나 뜨겁던지

여전한 한여름의 햇살이라

땀이 삐질삐질.

어느 기업의 건물 앞을 지나자니

모회장님을 규탄하는 천막과 농성.

도로 한차선을 메운,

광장의 아우성을 내는

이들을 싣고 온 모양새의 관광버스는

을지로 ,종로, 청계천까지 늘어섰다.

마침내 작정한 타올 사들고

동대문 운동장까지 걸었다.

이번에도

한 쇼핑몰 앞에서 또 다른

모 회장님 규탄 메시지가 중국어로도..

서울 복판을 걷는 일.

비리 고발 야단법석.

도시 전체가 아예 다 썩어버렸나보다.

 

 재량휴업일의 이틀째.

Hus만 출근.

수업 없는 마딸과

나처럼

재량휴업일을 맞은 또딸은

꿀 떨어지는 늦잠을 자고

나는 쇼파와 일체가 되어

자다 깨다를 반복.

저녁쯤 되자

살아난 것 같은 심신의 평화.

다음주 학교로 나가는 월요일 아침은

가벼울 듯하다.

일을 하지 않던 현모양처(?)의 일상  때는

가족의 이런 늘어짐에

다구침을 가했다는 생각이 문득..

집 밖에서

여타 활동의 고됨을 잊었다는 사실.

이제사

다시 그리고 새삼 느껴진다.

 

 지난 번

미국 여행중에 만난 친구가

한국에 왔다.

오랫만에

어머니도 함께 만났다.

지나치다 만나면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세월의 흔적을

그러나

곱게 듬뿍 담으셨다.

우리 엄마와 동갑인 친구의 아버지는

혼자로는 힘든 치매(증세)란다.

세월.

언제부터일까,

나의 화두는 '세월'을 곱씹고 있다.

아침, 창문을 열자니

냉기가 쑤욱..

당연히 

덤덤한 세월이 밀고 들어온다.

 

 나의 생일.

Hus가 추천한다는 퓨전 음식점으로.

괜찮았다.

생맥주의 거품이 딱 크림 맥주다.

마딸도 마셔보잔다.

먹성 자제하고 주문.

그런데

음식점을 나서니 포만감.

잠시 걷자고 나선 거리에

옷 속으로 냉기가 파고 드는데

막 무더위를 떠나보내고 난 뒤라 그런지

한기마저 느껴졌다.

 

 여름내 고생하던 선풍기도

덮개 씌워져 제자리에 얹혀지고

에어컨 코드도 전선과 이별.

아이들의 이불도 두꺼운 것으로.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월동 준비 완료.

한 겨울을 맞는 중에

어김없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새해를

만나는 일을 하겠지.

나이 듦의 익숙함도 함께.

 

 개교기념일이라

난데 없는 휴업.

또다른 친구들을 만났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의무처럼 순번을 정해 만나는 즈음.

약속은 해놓고 자꾸 망설여졌다.

딱히 그 친구들이 싫어서라기보다

내가 사람 만나는 일이 지루해서다.

초저녁,

만남시간을 끝내고 귀가.

하나의 숙제를 해치운 것마냥 후련.

일요일,

언니네 따라 을지로 노가리 호프 집에서

포장해온 노가리에 맥주를 홀짝하고는

낮에 듬뿍(?) 마신 커피가 무색할 지경으로 굿잠.

 

 가을을 타는 것은 아닌 것 같으나

포개지는 우울이 거지 개떡 같이 쌓인다.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체력에 감사한 것도 잠시

눈 떠있는 시간만큼 짜증이 얹어진다.

젠장.

지금껏의 한평생이란 것이..

흔한 위로로 자기조절!

'이 또한 (돌아보면) 부질 없던

어느 때인 것처럼 지나가리라.'

 

 영화, '해피 댄싱' ('Finding Your Feet')

한국 제목이 더 그럴싸하다.

주인공의 배역 이름.

내 영어 이름인 Sandra와 같다.

수영 가려 준비하고 남은 시간 동안

잠시 켠 TV에 영화의 엔딩까지 가버렸다.

'삶을 두려워하는 건 문제가 있어.'

최선이라 믿었던 삶의 도발 앞에

두려움이 따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그러나 그럴수록

난감한 현실을 남탓으로 방관 또는

비관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므로 

변화에 대한 받아들임 자세로 임하기.

자기 활력이 될 생활방식 필요.

이것이

두려움과 맞서는 첫단계일 것이고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나면 시야의 확장으로

두려움의 무게감이 덜해지는 것이 수순 아닐까.

수영 가방 들고

셔틀 안 놓치려고 부지런히 달려,

셔틀 안에서부터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 내내

(자본주의의 포옹이 필요한)

내가 지향하는 품위, 고상, 우아함 등등이

겹살을 덧댄 턱선의 무력감 같은

무게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나

내려놓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은 더 질겼다.

 

 저녁 귀갓길,

생크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생크림 케익을 살까 망설이다

생크림 듬뿍 넣은

크라상과 소보로 빵을 샀다.

친구 연주회에 가고 없는 Hus,

책상 끼고 앉은 자식들도 사양해서

나 혼자 폭식.

살만했다.

꾸물거리는 정서를 녹이는데는

정말이지

순백의 폭신하고 가벼운

생크림이 최고인 것 같다.

 

 (벌써)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사람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것마저

날 도와주지 않는다.ㅜ

예전 언니네랑 잘 가던 '뱃고동'

일요일도 점심식사가 된다.

착한 음식점의 역사를 가진 집.

예전 이야기하며 냠냠.

눈 앞에서 기회의 땅을 놓쳐버린,

지금은 복귀가 불가능한,

언니네의 잘나간던 때의 동네.

'갤러리아'에 앉아

        어눌한 언니가 추억을 곱씹는 동안

        형부는 씁쓸한 표정만 자아냈다.

젊은 날의 융성함은 간데 없는..

'옛날은 가고 추억만 남은 곳.'

이번엔

모카에 얹은 생크림과 초코시럽도

우울을 녹이지 못했다.ㅜ

 

 낮은 덥지만 저녁은 난방 필요.

감기가 오려나보다.

밤새 목도 따갑고 콧물이 줄줄

잠을 설치게 했다.

뜨거운 홍삼계피차를 홀짝.

월요일부터 고롱대면 정말 큰일이다.

그런데

월요일 저녁 귀갓길,

몸이 으실으실 춥고 덜덜 ㅜ

처방한 감기약을 먹고 끙끙

다음날,

다시 강체력 회복.

 

 모두 말리는 수영장행

봄부터 성실하게 지도하던

어린 강사님이

이번 달을 끝으로 떠난단다.

어디서 뭘 하든 

잘해낼 것 같아 응원 가득.

저녁,

        다시 살아난 강체력으로

피할 수 없는 주중 모임에..ㅜ

식사를 마치고 커피점을 찾으려

가로수 길을 걷다 눈에 꽂힌,

환한 조명에 빛나기까지 한 싯구.

 

'너는 내가 전생에 두고 온 꽃'

꽃을 사랑한다는 건

가시까지도 품는 일

우리 오늘도 힘든데

사랑이나 해볼까'

(봄정환〔사랑해란〕중)

 

사람들 사이로 끼어가면서

사람들보다 사람의 글이 눈에 홀라당.

근데

힘들때 사랑은 좀 위험하지 않을까.ㅋ

그리고

커피점에서 나누는 

쓰잘대기 없는 귀찮은 얘기들.

자기 관점으로 기억하며 우기고

어떤 말도 묵은 세월로 

이해되리라는 확신은

예의를 조금씩 피해 전혀 관계없는

내가 듣고 있어도 슬그머니 언짢음이..

내색하면 그럴테지.

'아고오, 웃자고 한 얘기야!"

웃기지도 않은 얘기를 웃자고?!

또 다음 만날 날을 정하잖다.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이

문화의 날이라는 것도 잊고 살았다.

마침,

아이들이 현장학습 간 날이라

나의 수업도 터엉..

일찍 학교를 나서는 일.

영화를 보고 싶었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Jocker'

엄청 잔인하다고 난리.

얼마전 종편에서 끝난

'타인은 지옥이다' 만 할까.

가만 놔둬도 힘든 약자들을 희롱하는 일.

놀이로 쥐를 구석까지 모는 고양이 짓거리.

'다 죽었어' 였다.

웬지 영화를 보다 잘 것 같다는 생각이..

예상대로 총소리에 놀라 깨고

내 끄덕이는 머리 축의

흔들림에 놀라 깨고

졸지 말아야 한다는

비몽사몽의 의지만으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일.

빨간 양복 입은, 광대 분장을 한 아서가

계단을 내려오며 추는

허허로운 춤 장면만 선명.

 

  BYE, Oct 2019!

 

Good Bye Song은 F. Sinatra의  ♬) 'That's Life'